기도가 항상 제일 앞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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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902회 작성일Date 25-08-29 16:56본문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이 정답이 될까요?
‘복음(福音)’이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좋은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사건은 다름 아닌 한 아기의 탄생과 맞물려 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그렇다면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이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향하신 긍휼과 자비,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셨고,
멸망의 심판에서 건지신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위해 생명 주신 주의 영광의 복음을 명확히 깨닫고
디모데에게 이 주의 복음을 한 마디로 ‘긍휼’이라고 전합니다(딤전 1:13-16).
그리고 이 긍휼은 결코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에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피력합니다(딤전 2:4).
이를 위해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장 우선순위로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딤전 2:1).
여기서 ‘첫째로’라는 말은 ‘첫째, 둘째, 셋째’라는 순서 중의 첫 번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둘째, 셋째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첫째로’는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럼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왜 최우선순위가 ‘간구, 기도, 도고, 감사’가 되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위기상황에 대한 간절함을 담은 간구의 기도, 무시로 깨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일상의 기도,
다른 이를 위한 도고의 중보 기도 그리고 주 뜻 이루실 줄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믿음의 기도가 늘 일 순위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곧 실망과 좌절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끌리는 사람에게는 긍휼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하겠지만,
원수요, 박해하는 자에게는 긍휼은커녕, 복음이란 단어조차 꺼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혹여 우여곡절 끝에 전한다 해도 작은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는 순간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긍휼의 불씨마저 꺼져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가장 우선순위에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간구, 기도, 도고, 감사라는 모든 기도를 통해 우리의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사도들이 일곱 명의 집사들을 세우며 자신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전념해야 할 사역은
다름 아닌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이라고 할 때 기도가 앞서는 이유입니다.
기도가 앞설 때 복음의 말씀을 전하며 다가오는 모든 저항, 박해, 반대까지도 능히 감사로 헤쳐나가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까지도 긍휼로 끝까지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매 맞고 차꼬에 채워져 감옥에 갇혔을 때 가장 우선순위로 한 것이 바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기도가 앞서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 고통의 순간에도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간절한 마음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자신들을 잔인하게 매질한 빌립보 간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가 항상 제일 앞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 재 구 목사
‘복음(福音)’이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좋은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사건은 다름 아닌 한 아기의 탄생과 맞물려 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그렇다면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이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향하신 긍휼과 자비,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셨고,
멸망의 심판에서 건지신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위해 생명 주신 주의 영광의 복음을 명확히 깨닫고
디모데에게 이 주의 복음을 한 마디로 ‘긍휼’이라고 전합니다(딤전 1:13-16).
그리고 이 긍휼은 결코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에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피력합니다(딤전 2:4).
이를 위해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장 우선순위로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딤전 2:1).
여기서 ‘첫째로’라는 말은 ‘첫째, 둘째, 셋째’라는 순서 중의 첫 번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둘째, 셋째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첫째로’는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럼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왜 최우선순위가 ‘간구, 기도, 도고, 감사’가 되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위기상황에 대한 간절함을 담은 간구의 기도, 무시로 깨어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일상의 기도,
다른 이를 위한 도고의 중보 기도 그리고 주 뜻 이루실 줄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믿음의 기도가 늘 일 순위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곧 실망과 좌절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끌리는 사람에게는 긍휼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하겠지만,
원수요, 박해하는 자에게는 긍휼은커녕, 복음이란 단어조차 꺼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혹여 우여곡절 끝에 전한다 해도 작은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는 순간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긍휼의 불씨마저 꺼져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가장 우선순위에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간구, 기도, 도고, 감사라는 모든 기도를 통해 우리의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사도들이 일곱 명의 집사들을 세우며 자신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전념해야 할 사역은
다름 아닌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이라고 할 때 기도가 앞서는 이유입니다.
기도가 앞설 때 복음의 말씀을 전하며 다가오는 모든 저항, 박해, 반대까지도 능히 감사로 헤쳐나가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까지도 긍휼로 끝까지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매 맞고 차꼬에 채워져 감옥에 갇혔을 때 가장 우선순위로 한 것이 바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도 기도가 앞서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 고통의 순간에도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간절한 마음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자신들을 잔인하게 매질한 빌립보 간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가 항상 제일 앞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