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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이 만날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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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6회 작성일Date 25-03-2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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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노라면 생각의 차이와 신념과 이념의 차이는 영원한 평행선인가라는 고민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세상 속에서야 한 가지 통일된 가치관이 없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특히 요즘은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같은 교단 안에서도,
같은 교회 안에서도 사분오열 생각의 차이로 나뉘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분명 창조주이신 한 하나님 아버지, 구원자이신 한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함께하시는 한 성령님을 믿으며,
모두 하나님 나라라는 일치된 가치관을 향하고 있음에도
세상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기에 아쉬움을 넘어 깊은 찔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완성을 향하여 성장해 가는 중이기에 그 과정 속에서 갈등도,
때로는 분리의 길을 걷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초기 교회 안에도 여러 가지 갈등과 분리의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율법적인 지침들과 도덕률 사이에서의 갈등(롬 14:1-12), 종과 상전 사이의 관계성과 직무 사이에서의 갈등,
남자와 여자 사이의 지켜야 할  선에 대한 갈등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에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한 갈등 상황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엡 5:22-6:9; 골 3:18-4:1).
또한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차이로 인한 갈등도 만만치 않았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질을 대하는 태도로 인한 갈등(마 6:24),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정치적인 성향에 대한 차이로 인한 갈등(마 22:15-22)
그리고 부활에 대한 신앙관의 차이로 인해 다가오는 부딪침(마 22:23-33)과 같은 것들이 교회 안에도 존재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갈등 요소들이 산적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갈등 요소들은 같은 기독교는 물론, 같은 교회 안에서도 때로는 갈등을 넘어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며
결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평행선을 긋기도 합니다. 평행선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기찻길입니다.
기찻길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인가,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것인가를 숙고해 봅니다.
목회자로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전체를 보며 하나 됨을 이루는 길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퍼뜩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왜 기찻길은 두 개의 평행선으로 놓인 것일까?”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모노레일이 아닌 이상에는 기찻길은 반드시 두 평행되는 선로가 놓입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선로로는 결코 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선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두 개의 선로가 반드시 합력해야 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두 선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선로가 하나 되어 본연의 목적을 이룰 때 그 존재의미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목적을 이룰 때 영원한 평행선이 하나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입니다. 기차가 달릴 때 기찻길은 하나로 만납니다.
그 평행선을 좁혀라, 같이 만나라 할 필요도 없이 기차가 달리면 함께 동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요? 모두 제각기 놓여진 듯이 보이지만 우리 위로 예수님께서 달리실 때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로 연합됩니다.
그 위에 예수님이 없기에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꿈을 가지고 있든지, 어떤 성품의 소유자든지,
어떤 능력이 있든지 그 위를 예수님이 달리시면 우리는 예수님의 꿈으로, 성품으로, 능력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