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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여기' 가 천국의 '여기' 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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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330회 작성일Date 25-03-15 15:08

본문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일명 변화 산이라 불리는 높은 산에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올라가 펼쳐진 사건 속에서 나타난 말입니다.
그 높은 산 위에서 예수님께서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뱉은 말이 바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 하사이다”(눅 9:33)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을 깨닫고 함께 머물기를 소망하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도인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는
 소명을 주셨기에 그 영광만을 맛보려는 태도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 산의 이야기는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 부정적인 자세를 긍정으로 바꾸는 길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 변화 산의 영광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한 순간 그것도 졸다가 맛본 영광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입에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는 간절한 외침이 쏟아져 나왔다면,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 놀라운 영광이 무엇인지를 늘 상기하기만 한다면 삶의 선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혼탁한 악영향으로 흐려지고, 가려진 눈으로 이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잠시 잠깐 보았음에도
그곳이 좋아 거기에만 머물고 싶다면 모든 비늘이 다 벗어져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누릴 그 영광은 어떠할 것인가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영광에 사로잡혀 시간의 흐름조차 인지할 수 없는 영원을 누릴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 영광을 바라며 현재의 고난을 이겨낼 것을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벧후 1:12-19).

    바울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이것을 매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상속자인 우리가 주님과 함께 그 영광을 받기 위하여 현재의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매일의 묵상이기 때문입니다(롬 8:18).
바울은 마지막까지 그 소망을 잃지 않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믿음의 경주를 달렸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베드로와 바울에게는 이미 이 소망이 성취되어 주님 계신 그곳에서 주님의 그 놀라운 영광을 늘 바라보며
“주여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의 감격의 고백을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또한 영원한 천국에서 이와 같이 주께서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할 그 날을 기대하며 달려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았던 그 높은 산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귀신이 활보하는 세상에서 그 영광 바라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르는 십자가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눅 9:37-42). 이 땅의 ‘여기’가 천국의 ‘여기’가 될 때까지 …….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