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교회

남산교회
로그인
생명의 말씀

목회단상

바알 신앙인가, 영호와 신앙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1회 작성일Date 25-03-11 11:36

본문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여호와냐, 바알이냐?”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은 흡사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5)고 던진 신앙의 도전장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이 거부하는 바알은 여호와 하나님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파악해 봄이 필요할 것입니다.

    ‘바알’이라는 명칭은 ‘주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상전’을 지칭할 때 바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출 21:22, 28, 29).
‘주인’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처럼 바알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특히 비와 폭풍의 신으로 알려진 바알은 농경사회의 풍요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그 명성은 가히 대단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를 위해서 바알의 비위를 맞추는 제사를 드렸고, 그 대가로 자신들의 부를 맘껏 축적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와 권력은 바알을 잘 섬긴 증거이며, 그 반대는 멸시한 증거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든지 축적한 부는 바알을 섬기는 대가로 받은 보상이니 바알도 결코 소유권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여호와 신앙은 어떠할까요? 여호와 신앙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는 역사적 고백 위에 기초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실제 역사 속에서 자신의 백성을 인자와 긍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구원해 주신 것처럼 그들 또한 이웃을 향한 구원의 도를 값없이 펼쳐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신앙에서 제사의 역할은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함이나 환심을 사기 위한 도구가 아닌,
섬김과 헌신 그리고 죄에 대한 회개의 의미로 사용될 뿐입니다.
 
  제사가 이러한 역할을 벗어날 때 여호와께서는 단호히 제사의 불필요성과 무가치성을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사 1:10-20).
이러한 여호와 신앙의 풍요는 바알 신앙의 풍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분명 풍요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임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 풍요는 여호와께서 섬김의 대가로 주신 것이라는 전제는 결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출발한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을 망각하고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하면 하나님께서는 일언지하에
“내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도 주었다”(신 8:17-18)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풍요는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이므로 하나님 사랑으로
하나님께 절대적인 감사를 표해야 할 도구이며, 나아가 이웃 사랑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알 신앙에서는 물질적 풍요와 부의 축적이 어떠한 사회적 책임도 동반되지 않지만 여호와 신앙의 생명력은 그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신앙을 따르고 있을까요? 물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에 대한 인식이 그 차이를 만듭니다.
지금 가진 것의 소유권을 내세우며 그것의 주인이 될 것인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소유로 올려드리고
모든 것을 가진 천국인이 될 것인지는 어떤 신앙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