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명령인가, 약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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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51회 작성일Date 24-11-15 15:03본문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과거에는 농경문화가 주류였기에 ‘추수감사’라는 말이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용어였다면 지금은 ‘추수감사주일’이라는 표현이 낮선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럼 어떤 표현이 지금 산업화 시대를 넘어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를 포용할 수 있는 감사의 용어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요즘 우리가 받는 급여가 연봉이든, 월급이든, 주급이든, 일당이든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가 있습니다. 바로 시급입니다.
해마다 시급이 얼마인가, 그리고 얼마나 오를 것인가에 초미의 관삼사가 주어지는 것은 그 시급이 급여 인상의 기준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시간 단위로 일당부터 연봉까지 계산되기에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표현이 결코 낮 설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일 년에 한 번 날을 정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이 아니라, 분초가 어우러져 만드는 매 시간이 곧 감사가 되는 시대이기에
‘추수감사’를 넘어서 ‘범사감사’가 일상이 될 수 있는 시대라는 점에서 더욱 성경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매일의 삶에서 ‘범사감사’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감사’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시 50:23)라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시 95:2)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라는
명령들을 살펴볼 때 감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원하시는 영광이라는 점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즐겨 하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니(고후 9:7)
감사 또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기대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감사는 히브리어 ‘토다’로 기쁨으로 양손을 뻗어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의미하고,
한자의 감사(感謝) 또한 ‘느낄 감’자에 ‘사례할 사’가 합해져 이루어졌다는 것은 곧 사례해야 함을 느끼게 한다는 뜻이니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추수감사가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 보면 감사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는 농경과 목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삶에 비와 이슬은 생명이었습니다.
비와 이슬이 내림으로 곡식과 과일이 자라 사람들이 살고, 들의 풀이 자람으로 가축과 천산의 짐승들 또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비와 이슬이 없이는 추수감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감사는 결코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4-15)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이 약속은 곧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감사를 우리의 삶에 직접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추수감사’의 차원을 넘어서 ‘범사감사’를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약속은 곧 한 시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겠다는 약속이니 우리에게는 최고의 삶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자비하신 약속인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과거에는 농경문화가 주류였기에 ‘추수감사’라는 말이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용어였다면 지금은 ‘추수감사주일’이라는 표현이 낮선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럼 어떤 표현이 지금 산업화 시대를 넘어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를 포용할 수 있는 감사의 용어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요즘 우리가 받는 급여가 연봉이든, 월급이든, 주급이든, 일당이든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가 있습니다. 바로 시급입니다.
해마다 시급이 얼마인가, 그리고 얼마나 오를 것인가에 초미의 관삼사가 주어지는 것은 그 시급이 급여 인상의 기준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시간 단위로 일당부터 연봉까지 계산되기에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표현이 결코 낮 설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일 년에 한 번 날을 정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이 아니라, 분초가 어우러져 만드는 매 시간이 곧 감사가 되는 시대이기에
‘추수감사’를 넘어서 ‘범사감사’가 일상이 될 수 있는 시대라는 점에서 더욱 성경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매일의 삶에서 ‘범사감사’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감사’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시 50:23)라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시 95:2)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라는
명령들을 살펴볼 때 감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원하시는 영광이라는 점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즐겨 하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니(고후 9:7)
감사 또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기대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감사는 히브리어 ‘토다’로 기쁨으로 양손을 뻗어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의미하고,
한자의 감사(感謝) 또한 ‘느낄 감’자에 ‘사례할 사’가 합해져 이루어졌다는 것은 곧 사례해야 함을 느끼게 한다는 뜻이니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추수감사가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 보면 감사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는 농경과 목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삶에 비와 이슬은 생명이었습니다.
비와 이슬이 내림으로 곡식과 과일이 자라 사람들이 살고, 들의 풀이 자람으로 가축과 천산의 짐승들 또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비와 이슬이 없이는 추수감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감사는 결코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4-15)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이 약속은 곧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감사를 우리의 삶에 직접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추수감사’의 차원을 넘어서 ‘범사감사’를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약속은 곧 한 시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겠다는 약속이니 우리에게는 최고의 삶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자비하신 약속인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