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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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57회 작성일Date 24-11-05 10:54본문
좋은 질문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때로는 정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깊은 숙고를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함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인류 역사에서 사람이 최초로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께 받은 최초의 질문입니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질문은 다름 아닌 “네가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고 별것 아닌 질문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인간 현존의 상태와 문제가 들어가 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 현존의 의미와 문제를 풀어갈 열쇠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에게는 곧 생명 길입니다.
이 질문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단순히 지금 현재 있는 장소를 묻는 질문 같이 들리시나요?
아니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향을 묻고 있는 것 같은가요? 그것도 아니면 왜 사는지를 묻고 있는 듯 한가요?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이 질문은 철학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있고, 인문학의 빈 공간을 메우는 심오함이 있습니다.
철학의 본질은 이 땅에서 생로병사를 겪는 인생에 대한 의미를 묻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그 인생의 인간다움과 인간의 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인간 중심적인 학문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생에게는 답이 없고,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이 “네가 어디 있느냐?”는 이 질문을 통해 양쪽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사람의 가치는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지고의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최고의 가치와 기쁨, 행복을 누리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신같이 되어 살겠다고 그 관계의 끈을 끊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더 화려하고 잘 될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고, 주권자가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며,
권력을 휘두르면 매사가 완전하게 통제 하에 들어와 신나게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결이 끊어지자 하나님의 형상이 죄악으로 들어찬 악마의 형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수치심이 들어와 무언가로 자신을 가려야 견딜 수 있기에 무화과 잎으로 얼키설키 몸을 가리고,
누군가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워야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기에 그때부터 변명과 비방과 비난이 서로의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그렇게 서로를 비난하며 살아가는 처참한 몰골이 인생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첫째는 왜 나와 끊어졌느냐는 안타까운 외침이시며,
둘째는 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의미로 돌이키시려는 애절함의 소리인 것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경쟁, 전쟁, 기근이 만연하고, 사랑과 우정과 신뢰의 파편들은 보일 듯 말 듯한 세상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은 애틋함으로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이 질문 속에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는 약속까지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삶과 길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최고의 행복이 바로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 아버지께서 펴신 사랑의 손을 꼭 잡는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김 재 구 목사
때로는 정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깊은 숙고를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함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인류 역사에서 사람이 최초로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께 받은 최초의 질문입니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질문은 다름 아닌 “네가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고 별것 아닌 질문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인간 현존의 상태와 문제가 들어가 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 현존의 의미와 문제를 풀어갈 열쇠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에게는 곧 생명 길입니다.
이 질문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단순히 지금 현재 있는 장소를 묻는 질문 같이 들리시나요?
아니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향을 묻고 있는 것 같은가요? 그것도 아니면 왜 사는지를 묻고 있는 듯 한가요?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이 질문은 철학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있고, 인문학의 빈 공간을 메우는 심오함이 있습니다.
철학의 본질은 이 땅에서 생로병사를 겪는 인생에 대한 의미를 묻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그 인생의 인간다움과 인간의 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인간 중심적인 학문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생에게는 답이 없고,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이 “네가 어디 있느냐?”는 이 질문을 통해 양쪽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사람의 가치는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지고의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최고의 가치와 기쁨, 행복을 누리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신같이 되어 살겠다고 그 관계의 끈을 끊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더 화려하고 잘 될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왕이 되고, 주권자가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며,
권력을 휘두르면 매사가 완전하게 통제 하에 들어와 신나게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결이 끊어지자 하나님의 형상이 죄악으로 들어찬 악마의 형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수치심이 들어와 무언가로 자신을 가려야 견딜 수 있기에 무화과 잎으로 얼키설키 몸을 가리고,
누군가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워야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기에 그때부터 변명과 비방과 비난이 서로의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그렇게 서로를 비난하며 살아가는 처참한 몰골이 인생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첫째는 왜 나와 끊어졌느냐는 안타까운 외침이시며,
둘째는 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의미로 돌이키시려는 애절함의 소리인 것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경쟁, 전쟁, 기근이 만연하고, 사랑과 우정과 신뢰의 파편들은 보일 듯 말 듯한 세상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은 애틋함으로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이 질문 속에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는 약속까지도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삶과 길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최고의 행복이 바로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 아버지께서 펴신 사랑의 손을 꼭 잡는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