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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으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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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95회 작성일Date 24-08-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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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파리 올림픽이 그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선수단의 규모에 비한다면 최고의 기록을 만들어낸 대회였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며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이 보람의 열매를 거두는 모습들이 대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했으나 아쉽게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후회 없는 경기들을 펼쳤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더 노력하여 다시 도전하겠다는 그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면 값진 경험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메달 소식과 더불어 들려온 한 가지 소식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올림픽 배드민턴에서 28년만에 여자 단식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긴 한 선수가 배드민턴 협회를 향하여 날린 쓴 소리 때문입니다.
위기상황, 특히 부상이라는 상황은 선수에게는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사활이 걸려있을 만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호하고, 돌보느냐에 따라 선수의 마음 자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거론된 바로는 협회가 선수들 관리보다는 자신들의 편의에 더 치중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 정도입니다.
정작 올림픽에 출전해 열심히 뛰어야 할 선수들은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고, 동행하는 협회 임원들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다면 주객전도일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이에 대해 협회는 협회대로, 선수는 선수대로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급한 것은 배드민턴 협회와 선수들의 깊은 유대관계의 회복입니다. 협회는 선수들을 위해서 존재하고, 선수들은 또 협회의 존재 의미를 살려줍니다.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생물들이 살아가는 방식 중에는 기생과 공생의 방식이 있습니다.
기생은 서로 다른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만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은 해를 입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그에 반해 공생은 다른 두 종류의 생물이 서로에게 어느 쪽도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사는 방식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생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공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분명 서로가 돕는 배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공생의 관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서로를 도우며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 행복한 공동체가 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공존할 때에는 반드시 그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람의 관계에서 그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가 느끼는 공존의 깊이는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이란 찬양의 후렴이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금메달을 딴 선수와 배드민턴 협회가 함께 어우러져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며 함께 기쁨을 나누어야 하는데 서로 척이 지고 있습니다.
협회는 선수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선수들은 협회를 향해 감사를 나누는 길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행이라는 공생이 회복되는 곳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스포츠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근본정신이 되어야만 십자가 사랑과 섬김 그리고 감사와 찬양이 만나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