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답인가, 정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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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672회 작성일Date 24-05-11 10:34본문
우리 시대는 과히 정보의 홍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떤 지식과 정보든지 원하기만 하면 골라가며 들을 수 있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시, 수필, 소설, 철학이라는 인문학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시대의 작품을 비롯하여 세계 명작은 물론 고전까지도 읽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길들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말씀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차고 넘치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갈증을 해소할 생수를 찾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점이 삶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선별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부각 되는 시절이 바로 우리 시대일 것입니다.
요즘은 시, 수필, 소설, 철학 등 여러 다양한 장르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더해가는 시절입니다.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노래는 늘 삶을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기에 노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심거리일 것입니다.
노래를 포함하여 이러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가장 큰 이유를 한 가지 들라고 한다면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갈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인문학이 사람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인문학이 하나님 없이 인생을 말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며, 이 세상 만물의 운행 이치를 구하려 하기에 진짜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를 한 곡 소개합니다. 바로 최희준씨의 ‘하숙생’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한 마디로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정해진 목적지 없이 떠돌다 그렇게 사라지는 안개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사람의 혼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호소와 공감을 자아내지만 영으로의 전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탄식하는 감정의 눈물은 있지만 그 눈물을 담으시는 분이 없으니 가야 할 곳이 없습니다.
“인문학은 본질을 발견하지 못한 땅의 신음이다!”라는 어떤 목사님의 말이 이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며,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인문학은 명답이라면 성경은 정답이다!”를 곱씹게 됩니다(『인문학을 하나님께3』).
그 구체적인 예가 바로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유리하는 나그네 길도 주께서 다 일일이 세어서 기록하셨다는 것이며, 그 길에서 흘린 눈물도 다 받으셨고, 그 이유도 다 책에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시작부터 끝까지를 다 아시는 알파와 오메가시니 인문학의 한계는 하나님만이 완전하게 채우실 수 있습니다.
김 재 구 목사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떤 지식과 정보든지 원하기만 하면 골라가며 들을 수 있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시, 수필, 소설, 철학이라는 인문학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시대의 작품을 비롯하여 세계 명작은 물론 고전까지도 읽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길들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말씀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차고 넘치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갈증을 해소할 생수를 찾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점이 삶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선별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부각 되는 시절이 바로 우리 시대일 것입니다.
요즘은 시, 수필, 소설, 철학 등 여러 다양한 장르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더해가는 시절입니다.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노래는 늘 삶을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기에 노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심거리일 것입니다.
노래를 포함하여 이러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가장 큰 이유를 한 가지 들라고 한다면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갈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인문학이 사람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알려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인문학이 하나님 없이 인생을 말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며, 이 세상 만물의 운행 이치를 구하려 하기에 진짜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를 한 곡 소개합니다. 바로 최희준씨의 ‘하숙생’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한 마디로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정해진 목적지 없이 떠돌다 그렇게 사라지는 안개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사람의 혼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호소와 공감을 자아내지만 영으로의 전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탄식하는 감정의 눈물은 있지만 그 눈물을 담으시는 분이 없으니 가야 할 곳이 없습니다.
“인문학은 본질을 발견하지 못한 땅의 신음이다!”라는 어떤 목사님의 말이 이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며,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인문학은 명답이라면 성경은 정답이다!”를 곱씹게 됩니다(『인문학을 하나님께3』).
그 구체적인 예가 바로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유리하는 나그네 길도 주께서 다 일일이 세어서 기록하셨다는 것이며, 그 길에서 흘린 눈물도 다 받으셨고, 그 이유도 다 책에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시작부터 끝까지를 다 아시는 알파와 오메가시니 인문학의 한계는 하나님만이 완전하게 채우실 수 있습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