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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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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37회 작성일Date 24-04-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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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임이 분명함에도 이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끝없이 오래 사는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어사전 또한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정의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에게는
그저 시간을 끝도 없이 늘려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또한 질병과 노화를 일으키는 유전정보를 밝혀냄으로 120세 시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행을 감안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유대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인간의 영생에 대한 상상이 기대의 차원을 넘어서 당연히 벌어질 미래로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생명공학 혁명은 마침내 인간을 그 영생이라는 단계에 도달하게 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하라리는 이것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한한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추구했던 존재인 길가메쉬의 이름을 따서
 ‘길가메쉬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이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 있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라리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이렇게 이 땅에서 영생을 얻은 인간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란 점은 현 시대의 모습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제어 능력이 없는 인생이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세상의 모습은 껍질은 발전이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은 여전히 빈 정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세에 나타날 인간 스스로 개선하지 못할 18가지의 증상들을 길게 나열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1-4).
만약 영생이 끝도 없는 시간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치명적이며, 고통스러운 증상들은 시간이 더해 갈수록
그 종류를 더해 가며 끝도 없이 나열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영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정의하시며,
영생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주지시켜주십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면 늘 동일하게 ‘계명을 지켰느냐?’(막 10:19)
혹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눅 10:26)라는 질문으로 대치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가진 것을 다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막 10:21)로 귀결되며 영생이 곧 예수님과 하나 되는 관계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름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는 것으로 구체화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고,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품을 때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 받으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영생인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