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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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803회 작성일Date 24-02-17 17:00본문
지난 설 명절 전에 기독교 대안학교를 설립한 신학교 제자 목사님의 부탁으로 설립예배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수원 근처인 병점으로 올라갔습니다.
긴 시간 운전하는 아내의 옆에서 졸음을 방지하기 위한 사탕이라든가, 혹은 목이 마를 때 생수병의 뚜껑을 열어주는 것은 전적으로 제 몫입니다.
운전석 옆에 조그만 사탕을 담은 통이 놓여져 있는데 동그랗고 작은 초록색 사탕들이 그득하게 담겨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한 두 개씩 함께 먹다보니 절반 정도는 사라진 듯 했습니다.
아내가 또 사탕을 찾기에 하던 대로 통을 들어, 뚜껑을 열고, 흔들어 두어 개의 사탕을 빼는 중에 각 면이 흰색과 핑크색에 모양도 전혀 다른 사탕 하나가 툭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이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본래 그 통에 들어있던 사탕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한자말이 언뜻 떠올랐습니다.
‘주객전도’는 주인과 객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입니다. 사물의 중요도, 순서, 지위 따위가 서로 뒤바뀌는 것을 묘사하는 한자숙어입니다.
예를 들면 물건 값은 3000원인데 배송비가 5000원인 경우, 밥값은 8000원인데 후식비가 커피+조각 케익 해서 10000원이 넘는 경우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운전석 옆에 위치한 사탕통 안의 본래 주인은 이 낯선 사탕이었는데 객들인 초록색 사탕들이 대거 들어옴으로 오히려 주인이 객 취급을 받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건 심각하지 않습니다.
배송비가 물건 값을 넘어가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고, 후식비가 아까우면 절제하면 되고,
사탕통에 다른 사탕으로 채운다고 해서 딱히 해로울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길에서 주객전도는 주체이신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고,
어느 순간 바뀌어야 할 객인 세상의 방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심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고갈되고 세상의 방식이 삶을 채우게 되면 오히려 가짜가 진짜처럼 여겨지고, 진짜가 가짜로 외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탕을 통에서 빼낼 때 갑작스레 흰 사탕 하나가 나왔을 때 “왜 가짜가 진짜 사이에 끼어있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이 활발하게 활약하던 시절은 대부분 진짜와 가짜가 뒤바뀐 주객전도의 시절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절은 그러한 상황이 쌓이고 쌓여서 극에 달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주객전도의 상황을 단 한 절로 요약한다면 다음 구절이 될 것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하나님의 백성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들을 섬기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럼 당연히 그 다음에 연속으로 벌어질 일이 있습니다. 가짜가 진짜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 가짜가 진짜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렘 18:18). 이렇게 가짜가 진짜로 인정되는 순간 멸망이 눈앞에 다가옵니다.
생수의 근원이 터진 웅덩이로 대체된 것은 단순히 중요도에서 순서와 위치가 바뀐 것이 아니라, 생명이 죽음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탕통에는 얼마든지 다른 사탕을 담아도 괜찮지만 우리 마음에는 결코 다른 것이 담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순간 주객전도가 일어나며 우리가 하나님의 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
긴 시간 운전하는 아내의 옆에서 졸음을 방지하기 위한 사탕이라든가, 혹은 목이 마를 때 생수병의 뚜껑을 열어주는 것은 전적으로 제 몫입니다.
운전석 옆에 조그만 사탕을 담은 통이 놓여져 있는데 동그랗고 작은 초록색 사탕들이 그득하게 담겨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한 두 개씩 함께 먹다보니 절반 정도는 사라진 듯 했습니다.
아내가 또 사탕을 찾기에 하던 대로 통을 들어, 뚜껑을 열고, 흔들어 두어 개의 사탕을 빼는 중에 각 면이 흰색과 핑크색에 모양도 전혀 다른 사탕 하나가 툭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이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본래 그 통에 들어있던 사탕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한자말이 언뜻 떠올랐습니다.
‘주객전도’는 주인과 객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입니다. 사물의 중요도, 순서, 지위 따위가 서로 뒤바뀌는 것을 묘사하는 한자숙어입니다.
예를 들면 물건 값은 3000원인데 배송비가 5000원인 경우, 밥값은 8000원인데 후식비가 커피+조각 케익 해서 10000원이 넘는 경우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운전석 옆에 위치한 사탕통 안의 본래 주인은 이 낯선 사탕이었는데 객들인 초록색 사탕들이 대거 들어옴으로 오히려 주인이 객 취급을 받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건 심각하지 않습니다.
배송비가 물건 값을 넘어가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고, 후식비가 아까우면 절제하면 되고,
사탕통에 다른 사탕으로 채운다고 해서 딱히 해로울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길에서 주객전도는 주체이신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고,
어느 순간 바뀌어야 할 객인 세상의 방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심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고갈되고 세상의 방식이 삶을 채우게 되면 오히려 가짜가 진짜처럼 여겨지고, 진짜가 가짜로 외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탕을 통에서 빼낼 때 갑작스레 흰 사탕 하나가 나왔을 때 “왜 가짜가 진짜 사이에 끼어있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이 활발하게 활약하던 시절은 대부분 진짜와 가짜가 뒤바뀐 주객전도의 시절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절은 그러한 상황이 쌓이고 쌓여서 극에 달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주객전도의 상황을 단 한 절로 요약한다면 다음 구절이 될 것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하나님의 백성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들을 섬기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럼 당연히 그 다음에 연속으로 벌어질 일이 있습니다. 가짜가 진짜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 가짜가 진짜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렘 18:18). 이렇게 가짜가 진짜로 인정되는 순간 멸망이 눈앞에 다가옵니다.
생수의 근원이 터진 웅덩이로 대체된 것은 단순히 중요도에서 순서와 위치가 바뀐 것이 아니라, 생명이 죽음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탕통에는 얼마든지 다른 사탕을 담아도 괜찮지만 우리 마음에는 결코 다른 것이 담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순간 주객전도가 일어나며 우리가 하나님의 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