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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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019회 작성일Date 24-01-27 09:57본문
우리가 잘 아는 속담 중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배운 아름다운 지혜 중의 하나입니다.
이 속담은 오늘날 우리가 극히 빠른 속도로 잃어가고 있는 중요한 미덕인 겸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명처럼 중요한 미덕이기에 그 의미를 깊이 숙고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속에서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벼는 아무런 강제 없이 점차 고개를 더 깊이 숙인다는 사실입니다.
즉 익어갈수록 저절로 고개를 아래로 더 숙이며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할까요?
이 의문을 품은 이유는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티끌만큼이라도 더 나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대놓고 자랑하든지, 아니면 은근히 내세워 우쭐대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겸손한 듯 보이는 사람도 겉으로 그 자부심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에서는 그 마음을 누르려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과시욕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냐, 아니면 그것을 속으로 품고 있는 사람이냐의 차이일 것입니다.
물론 그 차이도 결코 작은 것은 아니며, 거대한 인격의 차이임은 분명합니다.
그럼 그러한 차이를 넘어서 속에서도 아무 갈등도, 전쟁도 없이 그렇게 낮아질 수 있는 길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 답은 벼가 익을수록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곡식이나 과일이 다 유사하겠지만 벼는 익어가며 점점 더 알차지고, 알차짐에 따라 크기가 커지면서 무게가 무거워집니다.
결국 무게가 무거워지니 벼 줄기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더 무거워질수록 더 깊이, 더 낮게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벼 이삭은 무게가 겸손을 낳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저절로 숙이게 하는 그 무게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강제가 아닌 저절로 겸손이라는 도를 행하게 하는 그 무게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누리는 물질, 명예, 권위, 지식, 인맥, 자녀, 건강 등등이 우리에게 겸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게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늘어나며,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걱정하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바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손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자랑하는 마음의 교만입니다(신 8:11-17).
‘교만’은 바로 이 모든 것을 주시고, 이러한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해주신 하나님을 잊은 ‘망각’입니다.
‘교만’이 ‘망각’이라면 그럼 ‘겸손’은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럼 무게가 되는 기억이 무엇일까요?
우리를 겸손히 머리 숙이게 하는 무게는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고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생히 기억할 때 발생됩니다(신 8:18).
우리의 능력으로 이루어 진 것이 전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것임을 기억할 때
우리 스스로의 무게는 사라지고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무게가 우리 위에 쌓이게 됩니다.
그 은혜가 더 많이, 더 높이 쌓일수록 우리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그 무게로 인해 점점 더 숙여지고,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숙할수록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무게로 인해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김 재 구 목사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배운 아름다운 지혜 중의 하나입니다.
이 속담은 오늘날 우리가 극히 빠른 속도로 잃어가고 있는 중요한 미덕인 겸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명처럼 중요한 미덕이기에 그 의미를 깊이 숙고할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속에서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벼는 아무런 강제 없이 점차 고개를 더 깊이 숙인다는 사실입니다.
즉 익어갈수록 저절로 고개를 아래로 더 숙이며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할까요?
이 의문을 품은 이유는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티끌만큼이라도 더 나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대놓고 자랑하든지, 아니면 은근히 내세워 우쭐대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겸손한 듯 보이는 사람도 겉으로 그 자부심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에서는 그 마음을 누르려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과시욕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냐, 아니면 그것을 속으로 품고 있는 사람이냐의 차이일 것입니다.
물론 그 차이도 결코 작은 것은 아니며, 거대한 인격의 차이임은 분명합니다.
그럼 그러한 차이를 넘어서 속에서도 아무 갈등도, 전쟁도 없이 그렇게 낮아질 수 있는 길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 답은 벼가 익을수록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곡식이나 과일이 다 유사하겠지만 벼는 익어가며 점점 더 알차지고, 알차짐에 따라 크기가 커지면서 무게가 무거워집니다.
결국 무게가 무거워지니 벼 줄기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더 무거워질수록 더 깊이, 더 낮게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벼 이삭은 무게가 겸손을 낳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저절로 숙이게 하는 그 무게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강제가 아닌 저절로 겸손이라는 도를 행하게 하는 그 무게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누리는 물질, 명예, 권위, 지식, 인맥, 자녀, 건강 등등이 우리에게 겸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게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늘어나며,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걱정하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바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손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자랑하는 마음의 교만입니다(신 8:11-17).
‘교만’은 바로 이 모든 것을 주시고, 이러한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해주신 하나님을 잊은 ‘망각’입니다.
‘교만’이 ‘망각’이라면 그럼 ‘겸손’은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럼 무게가 되는 기억이 무엇일까요?
우리를 겸손히 머리 숙이게 하는 무게는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고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생히 기억할 때 발생됩니다(신 8:18).
우리의 능력으로 이루어 진 것이 전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것임을 기억할 때
우리 스스로의 무게는 사라지고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무게가 우리 위에 쌓이게 됩니다.
그 은혜가 더 많이, 더 높이 쌓일수록 우리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그 무게로 인해 점점 더 숙여지고,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숙할수록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무게로 인해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