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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양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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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44회 작성일Date 23-12-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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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 파스칼은 “하나님이 기도를 만드신 목적은 사람에게 하나님과 함께 성취하는 특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이는 곧 사람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창조의 동역자라는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이루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가는 파트너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기에
기도는 깊은 교제이면서 또한 참으로 역동성 있는 권능인 것입니다.

  이 권능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채워져야 하는지를
이미 다 아신다고 하십니다(마 6:32). 이 속에는 기도의 불필요함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기도의 내용에 대한 우선순위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되 먼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영혼의 호흡을 맞추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채우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맡겨드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기도하며 응답이 신속하든, 지연되든지에 관계없이 이 두 방향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며, 둘째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으려는 영혼의 갈망입니다.

  단 다섯 절로 이루어진 시편 43편은 이러한 기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1-4절까지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하게 간구하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시작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존전으로부터 멀어진 아픔에 대한 개인적인 호소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호소의 결론은 다시 주의 빛과 진리 안에 거하던 옛날로 돌아가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성전에 이르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43:4)라는 소망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가 배어나오며,
그 하나님만 예배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한 간절함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바벨론 포로시기를 말하는 것이라면 70년은 지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 성전에서 이렇게 예배하며 찬양하였던 그 삶으로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자의 낙심치 않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기도도 멈추며 아무도 정복할 수 없는 기도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수금으로 찬양하는 그 삶은 이미 기도 속에서부터 성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후에 또 다른 방향으로 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흘러가며 낙심도 되고, 또 불안하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보다는 다른 도움을 모색하려는 마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자신을 향한 요청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3:5).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전히 찬송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영혼이 늘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으로 가능해집니다. 기도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를 누리는 영혼의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그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염원하는 영혼을 향하여도 소중한 교제와 생명의 호흡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