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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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968회 작성일Date 23-11-23 15:16본문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이 익숙한 구절들은 하박국서의 중요한 결론이라는 사실로 인해서보다는 우리가 많이 부르는 경쾌한 음을 가진 찬양으로 인해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기와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 구절들의 내용은 참으로 깊은 신앙의 차원을 보여주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평안한 가운데 신앙을 지키다 자신의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믿음을 지키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와 긍정적인 신앙고백은 결코 쏟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고난과 좌절 속에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믿음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기에 참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타협이 아닌, 절대적인 신뢰를 요구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작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갖는다는 사실이
이러한 믿음의 절대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신앙의 출발을 하기 전에 사라는 이미 오랫동안 불임이었음을 선언하고 있고(창 11:30)
그런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어느 것 하나도 후사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12:1-3).
그럼에도 그는 그 약속을 이미 받은 것으로 믿고 출발합니다.
하박국서의 이 마지막 찬양을 살펴보면 선지자 하박국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계시로 임박한 바벨론의 침략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 사실로 인해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비록 잘못이 있을지라도 하나님도 알지도 못하며,
심지어는 죄악으로 더 가득한 삶을 사는 이방인인 바벨론을 들어서 징계하시려고 하시는가라는 사실이 그를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예언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고백을 보면 닥쳐진 현실의 상황은 정말 비관적이고,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절망 그 자체로 비추어집니다.
바벨론의 침공이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 황폐화 시켜버렸습니다. 인간의 삶을 지탱해 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회복하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하심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 현재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의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진노하심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다시 새 역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합 3:2).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가 깨달은 진리입니다(합 2:4). 그렇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게 합니다(히 11:1).
그러므로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가능케 합니다.
김 재 구 목사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이 익숙한 구절들은 하박국서의 중요한 결론이라는 사실로 인해서보다는 우리가 많이 부르는 경쾌한 음을 가진 찬양으로 인해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기와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 구절들의 내용은 참으로 깊은 신앙의 차원을 보여주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평안한 가운데 신앙을 지키다 자신의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믿음을 지키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와 긍정적인 신앙고백은 결코 쏟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고난과 좌절 속에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믿음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기에 참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타협이 아닌, 절대적인 신뢰를 요구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작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갖는다는 사실이
이러한 믿음의 절대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신앙의 출발을 하기 전에 사라는 이미 오랫동안 불임이었음을 선언하고 있고(창 11:30)
그런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어느 것 하나도 후사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12:1-3).
그럼에도 그는 그 약속을 이미 받은 것으로 믿고 출발합니다.
하박국서의 이 마지막 찬양을 살펴보면 선지자 하박국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계시로 임박한 바벨론의 침략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 사실로 인해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비록 잘못이 있을지라도 하나님도 알지도 못하며,
심지어는 죄악으로 더 가득한 삶을 사는 이방인인 바벨론을 들어서 징계하시려고 하시는가라는 사실이 그를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예언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고백을 보면 닥쳐진 현실의 상황은 정말 비관적이고,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절망 그 자체로 비추어집니다.
바벨론의 침공이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 황폐화 시켜버렸습니다. 인간의 삶을 지탱해 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회복하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하심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 현재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의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진노하심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다시 새 역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합 3:2).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가 깨달은 진리입니다(합 2:4). 그렇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게 합니다(히 11:1).
그러므로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가능케 합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