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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십자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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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62회 작성일Date 23-11-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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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 3년 6개월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면 삶은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 년 정도야 근근이 버텨내겠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점점 죽어가는 짐승들과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마음이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히 들어차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던 관계들도 점점 가족중심으로 돌아서며 마침내는 자기중심으로 결론에 이를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땅에  그러한 시절이 엘리야 때 펼쳐졌습니다.
그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이방의 한 여인인 시돈 땅 사르밧의 과부가 엘리야를 우선순위로 섬깁니다.
분명 그 여인의 말을 들어보면 남은 음식물의 우선순위가 자신과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운명에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두려워하지 말고 먼저 자신에게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가져오고 그 후에 아들을 위하여 만들어 먹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부탁도, 쉬운 응락도 할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여인을 통해 엘리야를 먹이기로 계획하셨고(왕상 17:9),
그 여인은 또한 엘리야로 인해 먹을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은 예비하셨습니다(왕상 17:14).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아름답고 복된 삶이 아버지 뜻입니다. 그 기적 같은 삶은 서로의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 여인이 엘리야의 그 말에 순종하여 그대로 행합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순종입니다.

    모든 것이 해피앤딩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과부의 외아들을 위중한 병으로 죽게 하십니다.
사랑의 빚을 잔뜩 지고 있는 곳이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흡사 저의 상황과 유사해 보입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 남산교회로 보내셔서 3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공급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산교회의 자리가 비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의 예배의 자리가 비어 가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셔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하십니까?”의 탄식을 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그 말이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을 죽게 하셨나이까?”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셔서 이렇게 남산교회와 성도님들을 괴롭게 하십니까?”
“이렇게 자리가 비어 가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엘리야는 여호와께 부르짖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였는데 그의 위에 세 번을 엎드려 그리 하였다고 합니다.
아이 위에 세 번을 엎드려 생명을 나누고, 호흡을 나누고, 체온을 나누고, 삶을 나누었습니다.
왜 세 번일까요? 베드로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을 부인한 것은 철저하게 관계를 끊는 행동이며,
예수님께서 세 번을 물으셨고 응답 받으셨다는 것은 다시 그 관계를 긴밀하게 연결하시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의 세 번 아이 위에 자신의 몸을 엎드리는 것은 자신의 생명 일체를 다 내어 주려는 굳건한 결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사르밧 과부의 입에서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는 고백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굳은 결심으로, 간절함으로, 사랑으로 생명이 나누어지고, 삶이 나누어질 때 공감이 일어나고 동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함께 말씀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느끼게 됩니다. 답은 멀리 있지 않고 결국 자신을 다 내어주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임을 깨닫습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