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이 같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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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070회 작성일Date 23-09-16 13:24본문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궁을 버리고 도피할 때 그 처절한 상황을 더욱 가중시키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베냐민 지파 사울의 친족 중의 한 사람인 시므이로 다윗을 향하여 극렬한 저주를 퍼부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 모든 저주를 하나님의 징계로 받고 묵묵히 피난길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시므이를 결코 죄 없는 자로 여기지 말고 지혜롭게 처단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그럼에도 살 수 있는 긍휼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 길을 살펴보면 시므이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시므이가 살 길은 솔로몬 왕과의 맹세의 언약을 통해 분명해지는데,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한 가지 규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는 엄명입니다.
시므이가 솔로몬 왕과 맺은 이 언약은 흡사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연상시킵니다.
아담이 살 길은 왕이신 하나님과의 맹세의 언약을 지키는 것으로, 에덴동산에 거주하며 한 가지 규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됩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거주하며 누리되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는 동일한 엄명입니다.
이처럼 시므이의 이야기가 아담의 이야기와 연계가 된다면 시므이는 과거의 한 사람이 아니라 현재의 나이며, 우리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므이가 예루살렘에 살며 3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합니다.
3년이면 모든 것이 익숙해질 시간입니다. 초보 운전자도 3년이면 능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어 사고 나기 딱 알맞은 때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는 주어진 규정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는 시기라 그럴 것입니다.
시므이도 명령에 무감각해 질 수 있는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엄중한 권위는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 두 명이 도망갔고, 그들을 가드에서 보았다는 소식에 신속하게 꾸려서 나귀를 타고 가서 결국 잡아옵니다.
종 두 명이 정말 생명보다 더 중요한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속에는 솔로몬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도 느껴집니다.
흡사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것과 같이 결국 그 어긴 것이 화근이 되어 죽음으로 넘겨집니다.
솔로몬이 공의로우냐, 아니냐 보다도 시므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보면
권위를 무시하고, 맹세를 어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기회를 가치 없이 여기는 인생의 어리석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를 돌아봅니다.
그렇게도 놀라운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서도 시므이가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생명의 길에 대해 점차 무감각해지듯이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씀의 경계를 벗어나 세상 속으로 과감히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고작 두 명의 종과 목숨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펀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종 두 명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과 성공이라면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종을 잡기 위해 시므이가 기드론 시내를 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 세상과 타협하며 거머쥐려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 자신도 목회의 안정과 부흥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두 종을 은연 중에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이미 죽었어야 할 죄인임에도 은혜로 살아있고, 또 살 수 있는 길까지 주어졌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가 바로 이 시대의 시므이입니다.”
김 재 구 목사
바로 베냐민 지파 사울의 친족 중의 한 사람인 시므이로 다윗을 향하여 극렬한 저주를 퍼부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 모든 저주를 하나님의 징계로 받고 묵묵히 피난길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시므이를 결코 죄 없는 자로 여기지 말고 지혜롭게 처단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그럼에도 살 수 있는 긍휼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 길을 살펴보면 시므이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시므이가 살 길은 솔로몬 왕과의 맹세의 언약을 통해 분명해지는데,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한 가지 규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는 엄명입니다.
시므이가 솔로몬 왕과 맺은 이 언약은 흡사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연상시킵니다.
아담이 살 길은 왕이신 하나님과의 맹세의 언약을 지키는 것으로, 에덴동산에 거주하며 한 가지 규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됩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거주하며 누리되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는 동일한 엄명입니다.
이처럼 시므이의 이야기가 아담의 이야기와 연계가 된다면 시므이는 과거의 한 사람이 아니라 현재의 나이며, 우리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므이가 예루살렘에 살며 3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합니다.
3년이면 모든 것이 익숙해질 시간입니다. 초보 운전자도 3년이면 능숙해지고, 자신감이 붙어 사고 나기 딱 알맞은 때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는 주어진 규정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는 시기라 그럴 것입니다.
시므이도 명령에 무감각해 질 수 있는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엄중한 권위는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 두 명이 도망갔고, 그들을 가드에서 보았다는 소식에 신속하게 꾸려서 나귀를 타고 가서 결국 잡아옵니다.
종 두 명이 정말 생명보다 더 중요한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속에는 솔로몬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도 느껴집니다.
흡사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것과 같이 결국 그 어긴 것이 화근이 되어 죽음으로 넘겨집니다.
솔로몬이 공의로우냐, 아니냐 보다도 시므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보면
권위를 무시하고, 맹세를 어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기회를 가치 없이 여기는 인생의 어리석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를 돌아봅니다.
그렇게도 놀라운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서도 시므이가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생명의 길에 대해 점차 무감각해지듯이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씀의 경계를 벗어나 세상 속으로 과감히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고작 두 명의 종과 목숨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펀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종 두 명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과 성공이라면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종을 잡기 위해 시므이가 기드론 시내를 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 세상과 타협하며 거머쥐려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 자신도 목회의 안정과 부흥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두 종을 은연 중에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이미 죽었어야 할 죄인임에도 은혜로 살아있고, 또 살 수 있는 길까지 주어졌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가 바로 이 시대의 시므이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