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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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108회 작성일Date 23-07-15 16:30본문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소중할까요? 창세기 26장은 이삭이 축복을 누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축복 이야기에는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삭이 축복을 누리는 것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점이 크게 부각됩니다(창 26:5, 24).
아브라함의 순종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며,
이 모든 땅을 주시고,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고,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창 26:3-4).
땅은 물질적인 복을, 후손은 힘과 권세를, 천하만민에게 복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면 그 당시에는 다 가지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들이 몹시도 누리고 싶어할 만합니다.
그럼 부모세대들을 향해서 이렇게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발 하나님께 순종하세요.” 부모의 순종이 자녀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부모가 자녀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이 부모에게 간절히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순종이 자동적으로 자녀들에게 무조건의 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삭 이야기는 부모의 순종과 자녀의 축복이 갖는 올바른 상관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아버지 아브라함 때나 이삭의 때나 살아가는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이삭의 때에 또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부모의 때나, 자녀들의 때나 살아가는 주변 상황은 별반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근으로 고민과 걱정 가득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 거류하면’ 약속하신 그 축복을 다 이루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는 그 땅은 기근으로 다 메말라 사람을 죽이는 땅이고,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을 것이란 말씀은 아득한 환상처럼 느껴지고,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기는커녕 당장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만이 보일 뿐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당장 다른 곳으로 이동 해야만 할 것 같은 절박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조건은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네게 주리라”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따르면 살 수 없고, 죽을 것만 같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본질일까요?
“내가 너와 함께 있어”가 본질일까요?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네게 주리라”가 본질일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어떤 위력인지, 능력인지 아는 사람만이 이 명령을 그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 땅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삭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근의 때에도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는 말의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순종이 이룬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신앙 여정을 통하여 순종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시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며 결코 변개치 않으신다는 것을 삶으로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삶으로 증거하며, 순종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유일한 길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굽히는 순간에 하나님은 굽은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꺾는 순간에 하나님은 꺾인 하나님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결코 왜곡되지 않고,
마침내 우리 자녀들의 가슴속에 온 세상의 주되심이 새겨질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 믿음이 이긴다는 것,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모든 상황을 이긴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그런데 이삭의 축복 이야기에는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삭이 축복을 누리는 것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점이 크게 부각됩니다(창 26:5, 24).
아브라함의 순종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며,
이 모든 땅을 주시고,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고,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창 26:3-4).
땅은 물질적인 복을, 후손은 힘과 권세를, 천하만민에게 복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면 그 당시에는 다 가지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들이 몹시도 누리고 싶어할 만합니다.
그럼 부모세대들을 향해서 이렇게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발 하나님께 순종하세요.” 부모의 순종이 자녀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부모가 자녀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이 부모에게 간절히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순종이 자동적으로 자녀들에게 무조건의 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삭 이야기는 부모의 순종과 자녀의 축복이 갖는 올바른 상관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아버지 아브라함 때나 이삭의 때나 살아가는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이삭의 때에 또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부모의 때나, 자녀들의 때나 살아가는 주변 상황은 별반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근으로 고민과 걱정 가득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 거류하면’ 약속하신 그 축복을 다 이루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는 그 땅은 기근으로 다 메말라 사람을 죽이는 땅이고,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을 것이란 말씀은 아득한 환상처럼 느껴지고,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을 받기는커녕 당장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만이 보일 뿐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당장 다른 곳으로 이동 해야만 할 것 같은 절박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조건은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네게 주리라”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따르면 살 수 없고, 죽을 것만 같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본질일까요?
“내가 너와 함께 있어”가 본질일까요?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네게 주리라”가 본질일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어떤 위력인지, 능력인지 아는 사람만이 이 명령을 그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 땅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삭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근의 때에도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는 말의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순종이 이룬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신앙 여정을 통하여 순종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시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며 결코 변개치 않으신다는 것을 삶으로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삶으로 증거하며, 순종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유일한 길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굽히는 순간에 하나님은 굽은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꺾는 순간에 하나님은 꺾인 하나님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결코 왜곡되지 않고,
마침내 우리 자녀들의 가슴속에 온 세상의 주되심이 새겨질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 믿음이 이긴다는 것,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모든 상황을 이긴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