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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영광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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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662회 작성일Date 22-12-1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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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란 단어 자체는 때로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는 말씀 속에서 고난은 곧 영광으로 그 결론에 이를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영광 사이의 그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여, 언제까지입니까?”라는 호소로 가득 채워질 때가 많습니다. 고난과 영광 사이의 간극은 결코 열릴 것 같지 않은 홍해로, 결코 좁혀질 것 같지 않은 광야로 삶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가시밭길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왜 좋으신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C. S. 루이스의 “고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확성기다”라는 말은 그 질문의 답으로 새겨볼 만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뜻은 고난은 곧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고 집중할 것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신호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구체적인 한 예로 야고보 사도의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 5:13)라는 권면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고난이 찾아올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고난이나, 그 고난을 일으킨 문제의 해결을 놓고 씨름하며 간구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기도의 핵심이 응답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고난은 기도를 통해 응답이라는 해결점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고난 속 기도의 결론이라 여겨지는 응답은 부수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이라는 심각한 문제 속에서 기도로 하나님을 찾기를 소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며, 해결자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은 이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목자가 되신다면 어떤 고난도 문제로 남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으로 그 결론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 고난 가운데서 올리는 기도의 수많은 내용들이 응답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 결론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입증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5-7)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고난을 통해 영광의 주이신 하나님 안에 더 깊이 거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반석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는 삶으로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난 가운데 다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응답을 받을 것이니 기도하라는 권면이 아닌, 이 하나님께로 다시 향하기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면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이렇게 고난과 영광 사이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그 간극에 홍해가 버티고 있을지라도 갈라버리실 것이며, 그 사이에 광야가 자리하고 있을지라도 독수리 날개로 업어 나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영광 사이는 하나님만이 메울 수 있는 간극인 것입니다. 이것이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아버지이심에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마 7:7)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우리와 더 깊은 사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