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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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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723회 작성일Date 22-10-0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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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외모에 대한 경외와 혐오가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삶을 살아가며 경험합니다. 자녀를 둘 키우며 청소년 시절 아이들이 외모에 무척 신경 쓰는 것이 때로는 안쓰럽기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기를 보냈던 1960-70년대만 해도 부모세대부터 먹고살기도 버거워 치아를 교정해 준다든가, 얼굴의 점이나 사마귀를 제거하는 시술을 해주거나, 키를 키우기 위해 성장판을 자극하는 시술을 받게 하거나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기술적인 발전도 미진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만한 여유조차 없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충치 치료만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었고, 오죽하면 옆으로 튀어나온 뻐드렁니는 매력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그렇게 위안을 삼던 시절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1-2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부터 학교 갔다 오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줄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체력단련인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고 3이 되면 성장판이 닫히기에 그 전에 성장판에 자극을 주어서 키를 키우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식이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서 그 때 의학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기도 합니다. 육체적인 키를 키우기 위해 성장판을 자극하는 방법에는 이렇게 운동요법이 있고, 마사지 요법 혹은 의학적인 약물과 주사요법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사 성장판이 닫혔다 해도 이모저모 키를 키울 수 있는 방법들 또한 제시됩니다. 인터넷에 제시된 정보로는 여섯 가지 정도의 방식이 있는데 칼슘과 마그네슘의 균형 있는 섭취, 정기적인 체중 부하 운동, 뼈와 근육 강화 운동, 충분한 수분섭취, 척추를 위한 신전운동과 충분한 수면취하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된다는 것은 그만큼 키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도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육체적인 것은 어떤 것이든 마침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평생 자라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이 자람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한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라기를 소망하는 것이 육체적인 키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자라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입니다(엡 4:13).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육체적인 키는 나 자신의 유익에서 그치는 것이며, 그저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일 뿐입니다. 물론 훈훈한 외모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저 지나가는 순간의 것일 뿐이기에 큰 의미가 없습니다. 60대 이상이 되면 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이 바로 육체의 유한함을 날카롭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분으로 예고되며 육체를 내세우지 않으십니다(사 53:2).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요 12:24). 그것은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며, 그 열매들은 결국 또 다른 생명들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의 희생을 뜻하며 그 값없이 베풀어 주신 희생을 통해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탄생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커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처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엡 4:15).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성장판은 육체가 아닌 십자가 사랑이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멈춤 없이 그 영적 성장판을 자극해 우리가 사랑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