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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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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080회 작성일Date 22-07-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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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며 가장 힘든 일 중의 한 가지를 들라고 한다면 단연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이 제목으로 된 책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한자 ‘미학(美學)’을 한글로 그대로 직역하면 ‘아름다움을 배움’이라고 할 수 있기에, ‘기다림의 미학’은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것’으로 해석 가능할 것입니다. 좀 더 부드럽게 바꾸면 ‘기다림은 아름답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대상을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을지 모르나, 생사가 달려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의 기다림은 아름답다고 하기보다는 숨 막히는 고통이라 하는 것이 더 바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상항 속에서도 기다림이 미학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나, 상황을 생각할 때 지극히 수동적인 요소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나, 도움을 바라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상대방의 의지에만 달려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기다림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비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기다림에 대하여 그와는 전혀 다른 각도를 보여줍니다. 시편 27편에는 악인들이 살을 먹으려고 왔고, 군대가 대적하여 진치며, 전쟁이 일어나 치려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러한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인생을 향하여 주어지는 명령이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입니다. 도저히 인생의 여력으로는 헤쳐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면 “그저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너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두 손 들고 기다리라”고 말할 터인데 내용인즉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데 그 중심에 ‘강하고 담대하며’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기다림’이 단순히 무능한 인생의 수동적인 태도일 뿐이라고 한다면 굳이 ‘강하고 담대하며’라는 명령이 들어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기다림’ 안에도 치러야 할 극렬한 전쟁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며, 가혹한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시 40:1-2). 그리고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며, 바닷물이 솟아나고 넘치는 환난이 밀려들 때 두려워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십니다. 흡사 가만히 있는 것이 무능함의 대명사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믿음의 대상을 향한 강력한 신뢰입니다. 그동안 확신을 심어준 그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응답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의 기나긴 시간 동안 안팎에서 수없이 들려오는 의심과 회의의 목소리들을 이길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함이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 대상을 향한 신뢰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기다림의 대상을 향한 신뢰는 더욱 크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강하고 담대한 기다림은 약속을 결코 변개치 않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우리 하나님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기다림의 시간 동안에도 변함없이 ‘힘을 주실 것’(시 29:11)이며, 또한 ‘힘이 되어 주실 것’(시 46:1)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강하고 담대하며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미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길이 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