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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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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017회 작성일Date 21-07-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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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지혜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지혜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크게 두 가지가 부각됨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상황판단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각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조합되어 지혜로운 선택과 삶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지혜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판단이 분명하기 위해서는 판단기준이 필요하고,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도 역시 행동기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은 제시함이 없이 현명하게 대처하라고만 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 속에서는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살길을 찾아서 처세술을 발휘하는 것이 결국 지혜가 될 것입니다. 이 길을 따르다가는 온갖 잡다한 것이 지혜의 길이 될 것입니다. 이런 혼란이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에 대하여 분명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욥 28:28; 잠 1:7; 9:10; 전 12:13).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마음에 와 닿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의구심이 드는 정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의 정의를 입증할 수 있는 예를 지혜자로 불린 다니엘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다니엘은 지혜자라고 하기에는 무모한 구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무너뜨리려고 숨어서 꾸미는 음모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심지어 깨달은 후에도 사자굴로 들어가는 죽는 길을 기꺼이 택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더 낫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는 것인데, 이런 인생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의 지혜는 다른 것이 아닌 설사 죽음의 길로 갈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할 때 그는 보지 못할지라도 다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이 꾸미는 음모에 오히려 자신들이 걸려 넘어지게 하시고, 그를 해하려던 그 방식대로 그들이 당하게 만드십니다. 이처럼 인간의 지혜는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아시며, 질서를 바로 잡으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 빛을 발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닌 무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은 그래서 진리인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가장 올바르게 대처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호와 경외의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생명까지 포함하여 가진 것을 다 잃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무지하다, 무모하다”라고 비웃는 조롱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지혜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사람들의 눈에 시시때때로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지혜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이 우리를 지혜자로 세워가고, 마침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 때가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사자 굴속에 들어가는 사건은 하룻밤이지만 그 하룻밤이 어떤 이에게는 수많은 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자들과 함께 매일 매일을 보내야 하는 삶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경외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끝까지 지혜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재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