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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목회단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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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회 작성일Date 26-01-16 17:30

본문

제자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주신 내용입니다. 바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막 8:34; 눅 9:23)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로 접했을 제자들에게는 고난이나 수난 정도가 아닌 죽음을 각오하는 삶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 동일하게 생명을 내어놓는 순교의 삶을 살았다는 것도 그 증거입니다. 그 이후로는 주로 개인적인 소명과 삶의 고난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십자가’라고 하셨으니 각 사람마다 십자가의 내용이 다를 것이라 여겨, 병, 가난, 오해, 박해, 실패, 외로움 등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감당하게 되는 고난을 십자가로 이해합니다. 이 고난 속에는 삶을 어렵게 만드는 배우자도, 자식도, 사람도, 직장도, 물질도, 사명도 역시 포함될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자기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문제와 어려움들은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지, 예수님을 따르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에서 예수님이 뜻하신 ‘자기 십자가’인가에 대하여 의구심이 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 결코 동떨어진 말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것임을 생각해볼 때 ‘자기 십자가’ 또한 ‘자기 부인’과 동일한 것을 의미할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수님의 욕망, 자존심, 명예, 주도권을 다 내려놓고, 자신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가 주되신 장소였다면, 우리의 ‘자기 십자가’도 역시 동일한 의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으셨기에 고난의 십자가 위에 끝까지 달려 계실 수 있었고, 자존심을 다 버렸기에 조롱을 다 견딜 수 있으셨으며, 명예를 다 내려놓으셨기에 모든 수치를 마다치 않으셨고, 주도권을 하나님께 다 드리셨기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한 용서를 선포하시며 끝내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할 수 있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자기 십자가’가 핍박, 박해, 고통, 좌절, 죄인을 견디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해할 수 없는 ‘자아의 죽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십자가에 죽은 존재이기에 그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감정도, 욕구도, 계획도, 주장도 펼칠 필요조차 없어진 것입니다. 오른뺨도 왼뺨도, 겉옷도 속옷도, 오리도 십리도 주님께는 그 의미를 잃었습니다. 이미 아버지 손에 다 맡겼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기 십자가’는 곧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롬 6:6)이며,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의 축소판인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곧 자기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름은 우리의 죽음이 매달려 있는 것을 항상 달고 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목적은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욕망, 자존심, 명예, 주도권을 다 아버지께 드리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 주께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드렸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는 어떤 고난과 박해, 역경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근본이 됩니다.

갬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