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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와 걱정이 치명적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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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45회 작성일Date 22-08-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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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초에 저지른 원죄는 다름 아닌 ‘하나님 같이 되려는 욕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길을 걷기보다는 하나님 같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람 스스로의 주권을 휘두르며 마음대로 하려는 열망인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가장 윗부분에는 사람이 자신의 삶은 물론이요, 이 우주의 왕좌를 차지하여 피조세계 전체를 주관하려는 것부터 가장 밑바닥에는 미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염려와 걱정입니다. 최고가 되어 모든 것을 다스리려는 욕망은 어느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가는 행위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하나님 같이 되려는 주권의 침해라는 점은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힘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도리어 하나님 같이 되려는 욕망의 근본 뿌리가 될 수 있음에도 그 점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음으로 더욱 심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염려나 걱정 없이 살고 싶어 합니다. 하루라도 모든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안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갈망이기도 합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오늘을 살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길은 모으고, 쌓아두는 것입니다. 오늘 쓰고 남는 것들을 쌓아두면 내일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더 확장되면 내일, 모레, 글피 그리고 일 년 뒤, 십 년 뒤 나아가서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심지어는 자손 대대로 쓸 수 있는 것들을 쌓아둘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복된 삶이며,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문제될 것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어떤 불법도 행하지 않고 성실함으로 이렇게 모으고, 쌓을 수 있는 삶을 살았다면 오히려 존경받아 마땅한 삶이라고 칭송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이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의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전능자요, 진정한 실재라는 것을 보는 믿음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고 한 날의 괴로움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19세기의 장로교 목사였던 테어도어 레드야드(1822-1909)가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오늘 해야 할 의무 위에 내일의 염려들을 더 쌓아 놓을 만큼 강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이 말은 매일이 우리의 강함이 아니라, 우리를 채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내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책임은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오늘 순종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몫이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면 됩니다. 염려와 걱정이 치명적으로 하나님 같이 되는 죄악의 근본 뿌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일이라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염려가 하나님의 책임과 주권을 우리의 것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작은 믿음’이라고 질책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물질의 종이 될지언정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정인 것입니다. 이처럼 내일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의 주권을 넘보며 하나님 같이 되려는 뿌리 깊은 죄악으로 향하게 하는 사탄의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염려를 일으키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향한 삶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삶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