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도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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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94회 작성일Date 22-07-23 16:13본문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노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늘 상기해야 함에도 잊고 살다가 문득 생각나 또다시 마음에 새기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듯한 복음성가가 한 곡 있는데 제목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 맞다’라는 제목의 곡으로 늘 상기해야 할 것을 잊고 사는 것에 익숙한 우리를 다시 되돌려 믿음의 본질로 돌아가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날 참 사랑하시네~ 하나님이 날 참 사랑하시네~ 세월에 묻혀 또 현실에 갇혀 잊고 살다 가도~ 그냥 살다 가도~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날 참 사랑하시네~.” 아! 정말 맞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현실의 벽에 그리고 망각의 늪에 빠져서 잊는다는 의식도 없이 빠져 나가버린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날 참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면 다윗은 자신과 죽음 사이는 한걸음밖에 안 된다(삼상 20:3)며 탄식을 쏟아 붓게 만드는 유다 광야를 헤맬 때에도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고 선포합니다. 인자하심은 히브리어 ‘헤세드’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생명을 능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사랑이면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다는 확신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진리를 잊고 산다는 것은 세상을 두려워하며 죽음이라는 막연한 적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한 강도의 고백으로 더 선명하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전에는 그 강도를 단순히 “마지막 죽음 직전에 천국을 침노한 참 운 좋은 한 사람이었구나”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왜 그렇게 운 좋은 강도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을까?”를 묵상하며 우리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 두 사람은 행악자들로 가장 극악한 죄를 저질러 십자가형을 받은 범죄자들입니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예수님께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비아냥거리며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강도의 고백이 참으로 소중한 것은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을 비록 마지막의 그 짧은 순간이지만 다시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며 돌이켜 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다”라는 이 말은 행한 악에 대하여 그에 해당하는 당연한 징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결코 그 강도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슴 깊숙이 파고듭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죄악에 대하여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받는다면 당연히 그 십자가 위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매달려 있는 그곳이 바로 죽음 이후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우리도 동일하게 있어야 할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대신하여 창세 이래로 그 행하신 것이 옳지 않은 것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겪으시고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참 사랑하신다는 것을 최고의 음으로 들려주시는 증거입니다. 그보다 더 높은 사랑의 음은 이 세상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우리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의 생명이라야 이렇게 십자가 위에서 죄인 중의 괴수라는 명패를 달고 그 종말에 이를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바로 문득 십자가 형벌이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다”라는 기억이 살아나 ‘아 맞다’를 외치며 우리 대신 지신 그 십자가 사랑에 감사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기억이 천국이라는 영생의 선물이 당연한 것 아니라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닫게 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