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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중심을 훈련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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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24회 작성일Date 22-06-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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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달 첫 날 새벽기도회에서 사울의 이야기로 말씀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말렉을 물리친 후 승리에 도취 되어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왕으로 백성들에게 인정받았던 추억의 장소 길갈로 당당하게 내려가 있는 사울에게 사무엘이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음에도 그것을 인식 조차 못하고 있는 사울의 모습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며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시는데(삼상 15:11), 사울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했다(삼상 15:13, 20)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 불편한 엇갈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기회입니다. 반드시 살려내야 할 회복의 기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지는 것은 희망입니다. 그러나 들려진 말씀이 귀를 통과하고 우리의 마음에 도달했을 때 불편한 엇갈림이 될 것인가, 순종의 예배가 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는 명령에 대해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갖다 붙인다면 충분히 다른 해석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이라고 한다면 세속적이기에 당연히 없애야 하겠지만 그것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칭호를 붙이면 거룩한 것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명령대로 하였다는 사울을 향해 사무엘이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우양의 소리는 무엇이냐는 말에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것들을 남겼고, 그 외의 것은 다 진멸했습니다”(삼상 15:15)라는 사울의 즉답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사울이 지혜롭다고 할 것입니다. 그 아까운 것을 다 태워버리는 것은 세상 경제원칙으로 보아도 낭비 중에서도 최악의 낭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것으로 남겨두면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할 수도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공동체의 가난한 자를 위한 구호품도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경제원칙은 물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대헌장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반적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사울을 칭찬은 못 할망정 불순종한 죄인으로 몰아붙이며 왕권마저 박탈하겠다는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가 아닌가 불평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보고 계십니다. 명령대로 철저히 했느냐, 안했느냐, 짐승을 남겼느냐, 아니냐의 그 모든 차원을 넘어서 사울의 중심(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아무리 많은 물질을 쏟아부어 주어도 하나님을 위하여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이 하나님 한 분으로 가득 차지 않으면 전리품으로 갖은 좋은 것들을 남겨두고서 거기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거룩한 명칭을 붙인 후에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필요하신 곳으로 옮기려 명령을 내리실지라도 그 명령이 마음에 닿지 않기에 실행되지 않습니다. 설사 마음에 닿는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다른 것이 새겨져 있으니 선한 행동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사울에게 내려진 명령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낭비요, 어리석게 비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중심을 훈련하고 있으신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과도하고, 미련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다 내려놓으라고 하는 말씀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게는 자살특공대가 되라는 말처럼 거북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울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렇게 순종의 삶이 두려워지게 됩니다. 사울을 통해서 나 자신이 사울의 중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희망은 중심을 훈련하시는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중심을 완전히 차지하시고 순종 외에는 생각할 것이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