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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능력에서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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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274회 작성일Date 22-12-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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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년에 출간된 윤흥길 작가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단한 것도 아닌 그저 한 마을의 ‘저수지 감시원’이라는 호칭과 그것을 증명하는 ‘완장’을 임종술이라는 한 남자에게 채워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그 저수지도 공적자산이 아닌 개인의 사유지일 뿐이고, 완장도 그 일개인이 채워준 말 그대로 허울 좋은 권위일 뿐입니다. 그러나 완장이 채워지자 누구든지 저수지에서 고기를 훔치거나, 심지어 허락 없이 접근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욕이든 폭력이든 무차별로 행사하며 권력의 맛에 빠져든다는 어이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가뭄이 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농사를 위해 물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저수지 주인이 결심하고 물을 내보내려 함에도 자신에게 완장을 채워준 주인에게까지 반기를 들며 대항하는 종술의 행동은 치명적인 권력의 맛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풍자는 권력에 집착하는 시대의 지도자들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것만은 아닙니다. 이렇게 초라한 권력에도 빠져드는 것이 사람의 심사인데 세상을 호령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그 자리가 대제국의 황제라면 어떤 위세일까요? 다니엘서를 읽노라면 세상을 호령하는 그러한 황제들의 마음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느브갓네살이라는 왕의 태도를 통해 주어진 완장에 대한 의식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제국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우리의 눈에도 낮설지 않은 모습이라는 점에서 결국 우리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궁 지붕을 거닐며 그의 입에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는 말이 터져나옵니다. 먼저 ‘내 능력과 권세’가 앞서고, 그 다음은 ‘내 도성’을 삼았다는 것으로 연결되어, 마침내 ‘내 위엄과 영광의 나타남’으로 그 끝에 이릅니다. ‘나의 능력’으로 시작하여 그 능력의 실체인 ‘내 것’으로 나아가며 마침내 ‘나의 영광’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인생의 모습입니다. 이런 태도를 자화자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결코 인생이라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목표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누가 자신에게 그 완장을 채워주셨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마땅히 해야 할 최상의 감동인 감사의 제사를 단 한 번도 드리지 못하고 안타깝게 끝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그 완장의 주인이 간섭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간섭이 때로 무섭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동반하지만 그것이 삶의 올바른 길을 열어주기에 오히려 희망이 됩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31). 때로 잃는 것이 절망과 고통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렇게 회복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비록 힘겨운 과정을 거쳐 가지만 마침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깨달을 때 삶이 달라집니다. 느브갓네살이 모든 것의 주권자인 하나님을 향해 하늘을 우러러 볼 때 마땅히 우러나와야 할 소리가 입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회복해야 할 감사 찬양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4).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마땅히 나아가야 할 삶의 길입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내 능력’을 앞세우고, ‘내 것’을 갈망하며, ‘내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곳에는 결코 감사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삶 속에 확신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의 중심에서 저절로 울려나오는 찬송이며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깃들게 하는 최상의 길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