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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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187회 작성일Date 23-04-26 16:38본문
부활 주일을 보내며 승리의 외침이 온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계사를 뒤바꾸는 대격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탄의 제국을 향한 거대한 일격이 가해진 것이며,
이는 단순한 미사일 한 방이 아닌 사탄의 왕국이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 정도의 핵폭탄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의 죗값을 다 치르셨기에 사탄은 우리를 향해 정죄할 거리를 완전히 상실했기에 마침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습니다(계 12:8-12).
그때 하나님 나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신호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 부활 이후의 약 2천년 세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점검할 시점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세계사를 돌아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할 때라 봅니다.
세계사에서 그 과정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역시 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것입니다.
한 제국이 일어나고, 망국으로 가고, 또 다른 제국이 일어나고, 망하고를 거듭하며 세계사가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제국과 제국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기존 제국의 쇠퇴를 틈타 신흥제국이 일어나 정복하는 과정이 교차되는 지점마다 포함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도 대단하게 일어났던 제국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뒤에 그렇게 허망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일이 벌어질까요?
시작할 때의 그 위세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위력임을 강조합니다.
이사야서에서 앗시리아의 위용은 땅 끝에서 빨리 달려오되 넘어지는 자도, 조는 자도 없고,
허리띠와 들메끈도 풀어지지 않으며, 화살은 날카롭고,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으며,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고,
먹이를 움키면 건질 자가 없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사 5:26-29).
예레미야서에서는 바벨론의 위세가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막을 수 없는 펄펄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곧 쏟아지는 형국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렘 1:14).
이러한 위력으로 외부의 적들을 잔혹하게 짓밟고 대제국이 섭니다. 페르시아, 헬라, 로마가 동일했습니다.
제국들이 이렇게 불같이 일어나 외부의 적들을 짓밟고 서는 것도 동일했지만, 이들이 망하는 이유도 동일했다는 점에서 심오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이 제국들의 무너짐은 모두 다 내부의 부패와 분열상이었습니다.
강력한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제압하여 적들을 다 소탕하였지만 자만으로 방심하며, 서서히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여 더 이상 외부의 적을 당해낼 수 없게 되며 무너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외세에 의한 멸망이기 보다는 자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주일마다 힘차게 선포합니다.
“예수 부활하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혹은
“예수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네!”가
교회마다, 예배 때마다 함성으로 터져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 이천여 년의 기간 동안 이 외침은 강약은 달리 했을지언정 멈추어졌던 때는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있게 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기에 결코 그 외침의 소리는 줄어들어서도, 축소되어서도 안 되며, 광대하게 퍼져나가야만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신 것”입니다(골 2:15).
드디어 세상을 십자가로 정복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깃발을 세상의 중심에 당당하게 꽂아주셨습니다.
지금 이 때 우리는 세계사의 흥망에 대한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강력한 위력으로 세상을 제압했던 제국들이 망국으로 갔던 이유가 대부분 내부의 부패와 분열로 그들이 가진 힘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외부의 적인 사탄의 결박을 괴멸시키셨다면, 이제 우리는 자기부인이라는 십자가의 삶으로 우리를 부패케 하고, 무능케 하는 내부의 적인 죄를 이겨야 합니다.
김 재 구 목사
예수님의 부활은 세계사를 뒤바꾸는 대격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탄의 제국을 향한 거대한 일격이 가해진 것이며,
이는 단순한 미사일 한 방이 아닌 사탄의 왕국이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 정도의 핵폭탄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의 죗값을 다 치르셨기에 사탄은 우리를 향해 정죄할 거리를 완전히 상실했기에 마침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습니다(계 12:8-12).
그때 하나님 나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신호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 부활 이후의 약 2천년 세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점검할 시점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세계사를 돌아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할 때라 봅니다.
세계사에서 그 과정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역시 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것입니다.
한 제국이 일어나고, 망국으로 가고, 또 다른 제국이 일어나고, 망하고를 거듭하며 세계사가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제국과 제국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기존 제국의 쇠퇴를 틈타 신흥제국이 일어나 정복하는 과정이 교차되는 지점마다 포함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도 대단하게 일어났던 제국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뒤에 그렇게 허망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일이 벌어질까요?
시작할 때의 그 위세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위력임을 강조합니다.
이사야서에서 앗시리아의 위용은 땅 끝에서 빨리 달려오되 넘어지는 자도, 조는 자도 없고,
허리띠와 들메끈도 풀어지지 않으며, 화살은 날카롭고,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으며,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고,
먹이를 움키면 건질 자가 없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사 5:26-29).
예레미야서에서는 바벨론의 위세가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막을 수 없는 펄펄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곧 쏟아지는 형국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렘 1:14).
이러한 위력으로 외부의 적들을 잔혹하게 짓밟고 대제국이 섭니다. 페르시아, 헬라, 로마가 동일했습니다.
제국들이 이렇게 불같이 일어나 외부의 적들을 짓밟고 서는 것도 동일했지만, 이들이 망하는 이유도 동일했다는 점에서 심오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이 제국들의 무너짐은 모두 다 내부의 부패와 분열상이었습니다.
강력한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제압하여 적들을 다 소탕하였지만 자만으로 방심하며, 서서히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여 더 이상 외부의 적을 당해낼 수 없게 되며 무너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외세에 의한 멸망이기 보다는 자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주일마다 힘차게 선포합니다.
“예수 부활하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혹은
“예수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네!”가
교회마다, 예배 때마다 함성으로 터져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 이천여 년의 기간 동안 이 외침은 강약은 달리 했을지언정 멈추어졌던 때는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있게 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기에 결코 그 외침의 소리는 줄어들어서도, 축소되어서도 안 되며, 광대하게 퍼져나가야만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신 것”입니다(골 2:15).
드디어 세상을 십자가로 정복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깃발을 세상의 중심에 당당하게 꽂아주셨습니다.
지금 이 때 우리는 세계사의 흥망에 대한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강력한 위력으로 세상을 제압했던 제국들이 망국으로 갔던 이유가 대부분 내부의 부패와 분열로 그들이 가진 힘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외부의 적인 사탄의 결박을 괴멸시키셨다면, 이제 우리는 자기부인이라는 십자가의 삶으로 우리를 부패케 하고, 무능케 하는 내부의 적인 죄를 이겨야 합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