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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 흔들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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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35회 작성일Date 22-10-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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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비판 중에는 사랑으로 도움을 주려는 조언이 있는가 하면 악의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비방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을 받는 쪽이 잘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해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이 마음에 깊숙한 상처를 남긴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상처가 그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정체성까지 혼선을 빚게 만드는 것이라면 절망으로든, 분노로든 표출될 수 있기에 위험성이 있습니다. 때로 비판은 이렇게 각 사람에게 주어진 고유의 정체성까지 뒤틀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한 예를 나발과 다윗이 얽힌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광야를 떠돌고 있는 중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사울 왕이 보내는 곳마다 승승장구하며, 마침내는 왕의 사위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에 왕의 질투심의 제물이 되어 누리던 모든 것을 다 잃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맘 붙일 곳도, 안심할 수 있는 장소도 그리고 기약도 없이 돌고 도는 도망자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은 익히 짐작이 갑니다. 그런 삶에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까지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그 숫자가 600명 가량이나 되었다 하니 광야에서 매일 매일의 필요를 채우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이 시기는 찬양보다는 탄식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때 그 고난의 강도를 짐작케 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윗의 마음속에 극도의 분노를 자아내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나발이라는 부유한 사람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나발의 목자들과 양 떼를 광야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어 해가 없게 했던 일이 있는지라 몇몇 소년들을 보내어 정중하게 필요한 물품의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때 돌아온 나발의 대답은 비판을 넘어서, 모멸감을 안겨 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삼상 25:10). 분명 이 말 속에는 다윗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윗을 억울하게 도망 다니는 왕의 사위가 아닌 주인에게서 제 맘대로 도망 나와 떠도는 종놈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더 보태기를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삼상 25:11)고 하며 부랑자 취급을 합니다. 이스라엘 전역은 물론 블레셋 지역까지 “사울을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는데 나발은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발의 입에서 나온 ‘도망 다니는 종놈,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근본 없는 놈’이라는 이 모욕적인 소리가 다윗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이 멸시 가득한 비방의 소리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면 견딜 수가 없어집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되고, 감정은 절망과 분노라는 두 갈래로 갈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그것은 결코 우리의 정체성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나발이라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가 퍼붓는 그 소리가 결코 다윗의 정체성이 아니며, 우리의 정체성도 아닙니다. 다윗의 정체성도, 우리의 정체성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존귀한 존재, 지금의 광야는 왕도를 배우는 장소이며, 그 과정이 아름답게 끝나는 날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로 잃어버린 정체성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회복됩니다. 그러할 때 절망과 분노가 가라앉고 탄식이 거두어지며, 다시 주를 찬양하는 삶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비판에 직면하게 될 때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정체성을 좌우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