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교회

남산교회
로그인
생명의 말씀

목회단상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257회 작성일Date 23-04-15 11:29

본문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구절입니다.
왜 바울 사도는 사랑을 기독교인이 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믿음과 소망 또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사랑 못지않게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들이라는 것은 이미 바울도 익히 잘 알고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현재라는 시간적인 초점이 ‘믿음과 소망’ 그리고 제일인 ‘사랑’ 사이의 틈새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글 번역으로는 잘 감지할 수 없는 시간적인 연결 고리가 신약성경 헬라어 원문에는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즉’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구문인 ‘뉘니 데(νυνι δὲ)’는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러나 지금은’ 혹은 ‘그리고 지금은’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울의 서신들 속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 표현은 주로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시간적인 강조점으로 사용됩니다
(롬 6:22; 7:6; 15:23, 25; 고전 5:11; 12:18; 14:6; 15:20; 고후 8:11, 22; 엡 2:13; 골 1:21, 26; 3:8; 몬 1:9, 11).
즉, “과거에는 이랬으나, 그러나 지금 현재는 이렇다”라는 변화를 더욱 심도 있게 강조하기 위한 표현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이 죄와 율법에 얽매인 옛사람에서 영에 속한 새사람으로의 전이를 강조하는 바울 서신들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주로 과거와 현재를 가름하는 표현인 이 ‘뉘니 데’가 이 구절 속에서는 ‘현재와 미래’를 가름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 구절을 다시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계속 있을 것인데 그럼에도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이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 들라면, 그 첫 번째를 고전 13:7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믿음과 소망에 해당하는 동사들이 사랑과 함께 나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은…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믿음), 모든 것을 바라며(소망),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 어느 것도 아닌 바로 사랑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는 원동력과 모든 것을 바라며 소망하게 하는 그 근원적인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재에도 사랑이 믿음과 소망을 지속시키는 힘을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고전 13:8절이 보여주는 것처럼 지속성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영원성에 있어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 이외에 모든 것이 폐기될 것입니다. 폐기되는 이유는 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또 다른 삶의 방향과 초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믿음도 소망도 다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소망의 주이신 예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것이며, 같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소망도 다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다 성취된 믿음이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오직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이 남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원토록 이루어가야 할 삶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인 지금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인 삶에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때 그때는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이끌어 가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이 세 가지 중에서 사랑이 제일인 이유입니다. 이 땅과 하늘을 잇는 최고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