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바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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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01회 작성일Date 23-02-04 10:27본문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의 한명인 소포클레스(기원전 496-406)라는 사람은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내일에 대한 강조점보다는 ‘오늘’이라는 현재에 모든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 진의는 매일을 보람 있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일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매일을 성실하게 살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더 많은 비극은 내일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오늘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90% 이상의 것이 현재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것이란 점에서 안타깝게도 미래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 우리네 삶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데 미래에 대한 염려가 지배하는 삶이되기에 매일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의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는 삶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현재의 기쁨보다는 미래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오늘이 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도 이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분명 광야일지라도 매일의 양식이 주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대한 염려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욕망이 오늘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평강이 아닌, 계속되는 다툼을 만들어갑니다.
모세와 다투는 듯 하지만 결국 그것은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출 16:7).
시편 95편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크신 하나님은 온 땅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후, 그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은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돌보시는 양이라는 깊은 사랑의 관계를 증거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시 95:7-8)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내일 들어라,” “모레 들어라” 혹은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면 들어라”가 아니라 ‘오늘’입니다.
그 오늘은 우리가 만들어낸 내일의 염려나 근심, 걱정이 지배하는 날이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 ‘그의 음성을 듣는 날’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보다 크신 여호와의 능력에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하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마 6:34).
과거인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니 이제 남은 것은 ‘오늘’밖에 없습니다.
이는 어제가 오늘을 지배하게 해서도 안 되며, 내일이 오늘을 망치게 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시는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내일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몫은 오늘 삶의 최우선 순위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며, 내일은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날로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나그네요, 순례자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또다시 요청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히 3:7-8).
안타깝지만 그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 그리고 욕망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결론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모든 신뢰를 두고 그의 음성을 들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의 안식을 누렸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 완전한 안식, 영원한 안식을 누릴 날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그의 음성을 듣는’ 오늘입니다.
김 재 구 목사
이 말은 내일에 대한 강조점보다는 ‘오늘’이라는 현재에 모든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 진의는 매일을 보람 있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일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매일을 성실하게 살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더 많은 비극은 내일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오늘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90% 이상의 것이 현재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것이란 점에서 안타깝게도 미래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 우리네 삶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데 미래에 대한 염려가 지배하는 삶이되기에 매일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의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는 삶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현재의 기쁨보다는 미래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오늘이 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도 이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분명 광야일지라도 매일의 양식이 주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대한 염려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욕망이 오늘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평강이 아닌, 계속되는 다툼을 만들어갑니다.
모세와 다투는 듯 하지만 결국 그것은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출 16:7).
시편 95편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크신 하나님은 온 땅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후, 그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은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돌보시는 양이라는 깊은 사랑의 관계를 증거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시 95:7-8)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내일 들어라,” “모레 들어라” 혹은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면 들어라”가 아니라 ‘오늘’입니다.
그 오늘은 우리가 만들어낸 내일의 염려나 근심, 걱정이 지배하는 날이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 ‘그의 음성을 듣는 날’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보다 크신 여호와의 능력에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하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마 6:34).
과거인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니 이제 남은 것은 ‘오늘’밖에 없습니다.
이는 어제가 오늘을 지배하게 해서도 안 되며, 내일이 오늘을 망치게 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시는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내일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몫은 오늘 삶의 최우선 순위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며, 내일은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날로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나그네요, 순례자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또다시 요청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히 3:7-8).
안타깝지만 그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 그리고 욕망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결론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모든 신뢰를 두고 그의 음성을 들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의 안식을 누렸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 완전한 안식, 영원한 안식을 누릴 날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그의 음성을 듣는’ 오늘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