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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살리는 해석' 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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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45회 작성일Date 23-01-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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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노라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야만 하는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작게는 개인적으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해석을 해야 하는 것부터 크게는 나라 사이의 외교, 정치, 경제 혹은 정책을 분석해야만 하는 국제적 해석 작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혹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에게 닥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필요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것은  정확한 확신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해석이 바른 것이고, 어떤 해석이 부당한 것인지를 판단할 기준이 애매하기에 결정을 어렵게 합니다.
이와 같이 해석을 함에 있어서 그 해석이 올바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늘 ‘살리는 해석’을 선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해석이 나에게는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라도 다른 이들을 살리는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살림의 해석은 결국은 자신 또한 살리는 길로 그 결론에 이른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시선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살리는 해석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그의 일생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철없는 시절에 외국에 노예로 팔려가서 수년 동안의 고생 끝에 주인의 신임을 얻어
좀 더 나은 위치를 얻게 되나 그것은 그에게는 너무 이른 행복이었고, 누명을 쓰고 종의 위치보다도 못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또 수년을 보내며 신임을 얻어 비록 감옥 속이지만 조금 나은 지위를 얻고, 같이 갇혀 있게 된 두 이집트 장관의 꿈을 해석해 주며 석방의 기대를 갖게 되나
복직된 장관의 무심함으로 기약 없는 감옥생활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생이 품을 수 있는 마음은 옷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준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요 복수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 모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셨고 요셉이 그 뜻을 받듭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8).
요셉은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철저하신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만나니 겪은 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살리는 해석이 자신을 삼키는 원한의 복수심으로부터 살렸고, 형제들을 살렸으며,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살리는 귀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와 같이 죽이는 해석을 했다면 열두 명의 형제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연합체인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 존재할 기반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살리는 해석을 했으며, 그 살리는 해석이 결국 자신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세계가 사는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살리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 위에서 살리는 해석을 할 때 우리의 그 살림이 우리를 구하는 길이며,
 우리 형제, 자매들을 구하고, 교회를 구하며, 우리나라를 그리고 세계를 구하는 길로 연결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세계에 복을 주고자 하시는 계획과 일치하기 때문에 분명히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뿐만 아니라 더욱더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살리는 해석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 살리는 해석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교회안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직장과 거래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