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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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334회 작성일Date 23-01-13 17:33본문
2023년이 시작되었고, 이제 세 주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히 메웁니다.
“회복에서 충만으로”라는 주제를 따라 이미 이런 저런 계획들은 세워져 있는데 그 계획들이 얼마나 의미 있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염려들이
뒤섞여서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님들을 사랑 가운데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는 그 이상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이 일들을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로 어떻게 이루어갈까도 깊이 숙고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비단 저만의 것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같은 교회에서 모두 크든 작든 주어진 직임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모두 다 어느 때보다도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리라 여겨집니다. 이런 생각 중에 갑작스레 링컨에 대한 일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미국의 혼란기인 남북전쟁 때였고, 그가 이끄는 북군은 군인의 숫자도 많았고, 이런 저런 비교를 해 볼 때 남군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군의 지휘관인 로버트 리 장군으로 인해 늘 패배를 거듭하였습니다. 이에 링컨은 하루에 두세 시간씩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북군의 지도자들이 모여 링컨에게 “하나님께서 북군의 편이 되셔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여 달라”고 자신들도 날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일언지하에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승리는 하나님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데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미 성경 속에도 이와 같은 사건이 있었음을 상기해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대과업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요단을 건너고 가나안 땅에 들어 왔을 때 여호수아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갔을까 일견 공감이 됩니다.
세상 속에서 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하여 생각함에도 참으로 많은 것이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오는데
한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어떤 생각이 오갔을지 다는 알 수 없지만 그 무게감만큼은 어렴풋이 이해가 됩니다.
가장 먼저 전쟁을 치러야 할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칼을 빼든 한 사람과 마주치게 됩니다. 화들짝 놀라 얼떨결에 질문을 합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이는 곧 “우리 편이냐, 적의 편이냐?”라는 질문입니다.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정해야 하니 당연한 질문이겠지요.
둘 중의 하나를 고르면 되는 질문이니, 답은 당연히 “○○ 편이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둘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고 합니다. 이 대답은 자신은 ‘하나님 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자의 편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여호수아가 바른 자세를 취합니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며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로 응답합니다.
그리고 명령이 떨어집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을 거룩하니라”(수 5:13-15).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편이 되는 길은 자신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명령이 신발이 되는 사람입니다.
주어진 일을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주신 말씀대로 따르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한해 순종을 위한 믿음은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공급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김 재 구 목사
“회복에서 충만으로”라는 주제를 따라 이미 이런 저런 계획들은 세워져 있는데 그 계획들이 얼마나 의미 있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염려들이
뒤섞여서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님들을 사랑 가운데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는 그 이상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이 일들을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로 어떻게 이루어갈까도 깊이 숙고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비단 저만의 것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같은 교회에서 모두 크든 작든 주어진 직임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모두 다 어느 때보다도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리라 여겨집니다. 이런 생각 중에 갑작스레 링컨에 대한 일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미국의 혼란기인 남북전쟁 때였고, 그가 이끄는 북군은 군인의 숫자도 많았고, 이런 저런 비교를 해 볼 때 남군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군의 지휘관인 로버트 리 장군으로 인해 늘 패배를 거듭하였습니다. 이에 링컨은 하루에 두세 시간씩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북군의 지도자들이 모여 링컨에게 “하나님께서 북군의 편이 되셔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여 달라”고 자신들도 날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일언지하에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승리는 하나님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데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미 성경 속에도 이와 같은 사건이 있었음을 상기해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대과업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요단을 건너고 가나안 땅에 들어 왔을 때 여호수아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갔을까 일견 공감이 됩니다.
세상 속에서 한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하여 생각함에도 참으로 많은 것이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오는데
한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어떤 생각이 오갔을지 다는 알 수 없지만 그 무게감만큼은 어렴풋이 이해가 됩니다.
가장 먼저 전쟁을 치러야 할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칼을 빼든 한 사람과 마주치게 됩니다. 화들짝 놀라 얼떨결에 질문을 합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이는 곧 “우리 편이냐, 적의 편이냐?”라는 질문입니다.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정해야 하니 당연한 질문이겠지요.
둘 중의 하나를 고르면 되는 질문이니, 답은 당연히 “○○ 편이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둘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고 합니다. 이 대답은 자신은 ‘하나님 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자의 편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여호수아가 바른 자세를 취합니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며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로 응답합니다.
그리고 명령이 떨어집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을 거룩하니라”(수 5:13-15).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편이 되는 길은 자신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명령이 신발이 되는 사람입니다.
주어진 일을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주신 말씀대로 따르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한해 순종을 위한 믿음은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공급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