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한자성어‘성령충만(聖靈充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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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620회 작성일Date 22-12-31 10:25본문
또 한 해가 흘러갔고, 새로운 해 2023년을 맞이했습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전국의 교수들이 그 해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의미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한자성어를 택합니다.
그 한자성어가 한 해를 평가하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2001년부터 시작되었고 매해 12월에 교수신문에 공표합니다.
물론 교수라는 특정 단체의 의견이기에 모든 계층이 참여하는 전 국민적인 의견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한 계층이 바라보는 사회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견해는 참조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12월에도 어김없이 이 행사는 진행되었고, 전국 대학 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0.9%인 476명이 ‘과이불개(過而不改)’라는 한자성어를
지난해의 사회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택했습니다. 이 단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단어일 것입니다.
논어에서 온 것으로 전체적인 단어는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칠 줄 모르는 것이 진정한 잘못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지난해를 돌아볼 때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종교 등의 수많은 분야에서 잘못들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바로잡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 포함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다음 순위를 잇는 세 한자성어도 과히 밝지 않은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며 이러한 잘못이 더욱더 쌓여만 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가득합니다.
두 번째는 ‘욕개미창(欲蓋彌彰)’으로 ‘잘못을 감추려 하면 더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뒤는 ‘누란지위(累卵之危)’로 ‘달걀을 겹쳐 쌓는 것처럼 위태하다’라는 뜻으로 상황이 매우 위태로운 지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문과수비(文過遂非)’로 ‘잘못된 허물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꾸미어 고치지 아니함’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네 가지를 연결시키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칠 줄 모르고 오히려 감추려 함으로 더욱 위태한 상황으로 나아가 사회가 도덕적 해이감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느껴집니다.
이런 한자성어들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몸담고 있고,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이와 같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단은 내릴 수 있으되 처방이 없기에 해결점이 없습니다. 설사 처방을 내릴지라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으니 해결의 길은 멀기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교회들은 지난 한 해 코로나시기를 벗어나며 여기저기서 회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회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처음 사랑이 회복되어야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살아나고, 이웃을 향한 증거가 꽃을 피우며, 미래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권능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뜨거웠던 사랑을 나누었던 그 때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는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계시록의 7교회를 향하여 항상 결론에서 선포되고 있다는 것은 그 길만이 유일한 해결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요 16:8)입니다.
먼저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며, 정결케 된 우리를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셔서 소금과 빛으로 세상을 고치는 존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산교회는 올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엡 5:18)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믿음의 경주를 달릴 것입니다.
성령충만이 우리를 처음 사랑으로 이끌 것을 확신하며, 마침내 올해의 한자성어가 ‘과이불개’가 아닌, ‘성령충만(聖靈充滿)’으로 그 결론에 이를 것을 기대해 봅니다.
김 재 구 목사
해마다 12월이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전국의 교수들이 그 해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의미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한자성어를 택합니다.
그 한자성어가 한 해를 평가하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2001년부터 시작되었고 매해 12월에 교수신문에 공표합니다.
물론 교수라는 특정 단체의 의견이기에 모든 계층이 참여하는 전 국민적인 의견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한 계층이 바라보는 사회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견해는 참조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2년 12월에도 어김없이 이 행사는 진행되었고, 전국 대학 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0.9%인 476명이 ‘과이불개(過而不改)’라는 한자성어를
지난해의 사회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택했습니다. 이 단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단어일 것입니다.
논어에서 온 것으로 전체적인 단어는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칠 줄 모르는 것이 진정한 잘못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지난해를 돌아볼 때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종교 등의 수많은 분야에서 잘못들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바로잡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 포함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다음 순위를 잇는 세 한자성어도 과히 밝지 않은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며 이러한 잘못이 더욱더 쌓여만 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가득합니다.
두 번째는 ‘욕개미창(欲蓋彌彰)’으로 ‘잘못을 감추려 하면 더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뒤는 ‘누란지위(累卵之危)’로 ‘달걀을 겹쳐 쌓는 것처럼 위태하다’라는 뜻으로 상황이 매우 위태로운 지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문과수비(文過遂非)’로 ‘잘못된 허물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꾸미어 고치지 아니함’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네 가지를 연결시키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칠 줄 모르고 오히려 감추려 함으로 더욱 위태한 상황으로 나아가 사회가 도덕적 해이감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느껴집니다.
이런 한자성어들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몸담고 있고,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이와 같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단은 내릴 수 있으되 처방이 없기에 해결점이 없습니다. 설사 처방을 내릴지라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으니 해결의 길은 멀기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교회들은 지난 한 해 코로나시기를 벗어나며 여기저기서 회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회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처음 사랑이 회복되어야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살아나고, 이웃을 향한 증거가 꽃을 피우며, 미래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권능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뜨거웠던 사랑을 나누었던 그 때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는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계시록의 7교회를 향하여 항상 결론에서 선포되고 있다는 것은 그 길만이 유일한 해결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요 16:8)입니다.
먼저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며, 정결케 된 우리를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셔서 소금과 빛으로 세상을 고치는 존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산교회는 올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엡 5:18)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믿음의 경주를 달릴 것입니다.
성령충만이 우리를 처음 사랑으로 이끌 것을 확신하며, 마침내 올해의 한자성어가 ‘과이불개’가 아닌, ‘성령충만(聖靈充滿)’으로 그 결론에 이를 것을 기대해 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