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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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670회 작성일Date 08-09-06 15:12본문
살아 있는 것
오래전부터 이가 시려서 치과에 가봐야지 하고 벼르다가 지난 주 형제가 하는 치과를 찾았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충치가 생겨서 아픈 것이었습니다. 충치 뿐 아니라 신경 치료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치료를 시작 했습니다. 마지막 코스로는 제 본래의 이는 갈아내고 그 위에 뚜껑을 씌우는 crown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자매가 본을 뜬다고 하면서 몇 번 씩이나 ‘씌웠다, 벗겼다’를 계속 하는데, 씌울 때 마다 시리고 아팠습니다. 그러면 자매님은 또 벗겨서 손질해서 다시 씌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시리다고 하면 또 벗겨서 손질해서 다시 씌웠습니다.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나중에는 미안해서라도 웬만하면 괜찮다고 할까도 싶었지만, 그래도 시린 것은 정직하게 말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지금도 계속 시리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간호사 자매 말이 아직 신경이 살아 있어서 조금만 크라운의 높이가 안 맞으면 시리다고 하면서 당연한 듯 또 벗겨서 손질 하였습니다. 신경이 살아 있어서 조금만 높이가 안 맞아도 시리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 인체가 얼마나 민감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는 아주 작은 지체이고, 그 이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은 더 작은 부분이지만, 잘 맞지 않는 이물질이 들어올 때, 느끼는 반응은 너무 섬세하고 민감한 것이었습니다. 이 반응은 곧 나의 뇌에 전달되어 시리다고 말 하도록 입에 명령합니다. 작은 신경 하나가 몸 전체를 움직이도록 뇌에 영향을 줍니다. 과연 살아있는 것은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주님의 몸으로 자주 비유합니다. 몸의 아주 작고 미미한 지체라도 아픔을 느끼면 그 반응은 곧 머리되신 예수님께로 전달됩니다. 예수님은 작은 지체의 아픔을 온 몸에 알려서 모든 지체가 함께 이 아픔을 느끼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지체들이 작은 지체의 아픔을 보호하고 감싸주어 몸의 균형을 지키게 해 줍니다. 이것이 교회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반응하듯이, 살아 있는 교회는 아픔도 기쁨도 함께 느끼며 반응합니다. 우리가 지체의 아픔이나 기쁨을 함께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있지 않습니다. 살아있다 하여도 신경이 죽어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의 아픈 지체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아픈 지체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살아있는 우리가 되기를 머리 되신 예수님은 명하십니다. 혹시 지금 옆의 지체가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사랑방 사역과 중보기도 사역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신경이 민감하게 살아있는 주님의 몸을 이루어 그분의 생명력을 함께 나누는 가을이 되기 바랍니다.
나팔수 강 승구
오래전부터 이가 시려서 치과에 가봐야지 하고 벼르다가 지난 주 형제가 하는 치과를 찾았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충치가 생겨서 아픈 것이었습니다. 충치 뿐 아니라 신경 치료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치료를 시작 했습니다. 마지막 코스로는 제 본래의 이는 갈아내고 그 위에 뚜껑을 씌우는 crown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자매가 본을 뜬다고 하면서 몇 번 씩이나 ‘씌웠다, 벗겼다’를 계속 하는데, 씌울 때 마다 시리고 아팠습니다. 그러면 자매님은 또 벗겨서 손질해서 다시 씌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시리다고 하면 또 벗겨서 손질해서 다시 씌웠습니다.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나중에는 미안해서라도 웬만하면 괜찮다고 할까도 싶었지만, 그래도 시린 것은 정직하게 말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지금도 계속 시리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간호사 자매 말이 아직 신경이 살아 있어서 조금만 크라운의 높이가 안 맞으면 시리다고 하면서 당연한 듯 또 벗겨서 손질 하였습니다. 신경이 살아 있어서 조금만 높이가 안 맞아도 시리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 인체가 얼마나 민감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는 아주 작은 지체이고, 그 이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은 더 작은 부분이지만, 잘 맞지 않는 이물질이 들어올 때, 느끼는 반응은 너무 섬세하고 민감한 것이었습니다. 이 반응은 곧 나의 뇌에 전달되어 시리다고 말 하도록 입에 명령합니다. 작은 신경 하나가 몸 전체를 움직이도록 뇌에 영향을 줍니다. 과연 살아있는 것은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주님의 몸으로 자주 비유합니다. 몸의 아주 작고 미미한 지체라도 아픔을 느끼면 그 반응은 곧 머리되신 예수님께로 전달됩니다. 예수님은 작은 지체의 아픔을 온 몸에 알려서 모든 지체가 함께 이 아픔을 느끼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지체들이 작은 지체의 아픔을 보호하고 감싸주어 몸의 균형을 지키게 해 줍니다. 이것이 교회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반응하듯이, 살아 있는 교회는 아픔도 기쁨도 함께 느끼며 반응합니다. 우리가 지체의 아픔이나 기쁨을 함께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있지 않습니다. 살아있다 하여도 신경이 죽어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의 아픈 지체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아픈 지체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살아있는 우리가 되기를 머리 되신 예수님은 명하십니다. 혹시 지금 옆의 지체가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사랑방 사역과 중보기도 사역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신경이 민감하게 살아있는 주님의 몸을 이루어 그분의 생명력을 함께 나누는 가을이 되기 바랍니다.
나팔수 강 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