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교회

남산교회
로그인
생명의 말씀

목회단상

천국과 영생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041회 작성일Date 23-07-08 13:01

본문

‘천국’이라는 말과 ‘영생’이라는 말은 그 언어적인 모양새나, 어감만 다를 뿐 동일한 의미입니다. ‘천국’은 장소적인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고, ‘영생’은 그 장소에서 갖게 될 누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한 차이점이 느껴지지만 각 복음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동일한 것의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이란 단어는 복음서에서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며 36번 사용됩니다. 이에 반해 ‘영생’이란 단어는 복음서 안에 31번 나타나는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합하여 12번 나타나고, 그 외에 19번은 요한복음에 등장합니다. 이는 요한복음은 ‘천국’이란 말 대신에 동일한 의미로 ‘영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인생이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시간의 연장선인 ‘오래 사는 것’을 넘어서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딱히 더 좋은 대답을 하기에는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대하여 특별히 반박할 만한 여지조차 갖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게는 영생에 대하여 단안을 내릴 만한 그 어떤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을 듣고,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성경의 곳곳에서 선포되고 있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존재하는 속성입니다(시 48:14; 사 40:28; 롬 16:26; 계 15:7). 이처럼 ‘영원’이 하나님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한다면 그 영원과 밀접히 연관된 영생 또한 하나님을 벗어나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영생에 대한 개념에 철저한 변화가 요구됩니다. 영생은 무한히 연장되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가 전하는 영생의 정의는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새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라고 선언하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 있는 것이 곧 영생임을 전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성경은 연구하는데 이 성경이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은 등한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는 영생을 얻기 위해 마땅히 다가가야 할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요 5:39-40). 만약 영생이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예수님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기대하고 있는 영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되짚어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관해서도 이제 시각의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천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간간이 ‘들어 간다’ 혹은 ‘들어가지 못 한다’라는 표현이 따라붙기에 장소가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간다, 들어가지 못 한다’의 이유를 분명히 안다면 천국도 역시 관계의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것은 천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마 13:24)와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마 20:1) 그리고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마 22:2)는 비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뿌린 사람, 집 주인, 어떤 임금’과의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 천국임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며 아바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다면 천국과 영생안에 있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