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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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15회 작성일Date 11-10-02 11:15본문
가을과 설렁탕
아내와 함께 설렁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설렁탕을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갑자기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갑게 느껴지는 상가의 불빛들, 바뀌어진 옷차림들, 냉면집보다 따뜻한 설렁탕을 찾는 사람들, 이렇듯 가을의 모습들이 연상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을과 설렁탕이란 두 단어가 연결되어졌습니다. 가을과 설렁탕, 저에게는 이 두 단어를 이어주는 추억이 있습니다.
1973년 가을, 그 때 저는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는 재수생이었습니다. 마음도 초조하고 몸도 초조할 때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가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살던 저는 반가운 마음으로 설렁탕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스산한 가을날 오후, 어머니와 함께 설렁탕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재수하는 아들에게 좀 더 비싼 것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었지만, 설렁탕 한 그릇만 사 줄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지갑 사정이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설렁탕 두 그릇이 나왔습니다. 저는 숟가락으로 설렁탕을 퍼 올렸는데, 건져지는 것은 밥이 아니고 허연 밀가루 국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식당 주인에게 밥을 달라고 주문하자, 분식 날이라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쌀이 귀할 때인지라 일주일에 두 번씩 분식의 날이 있었습니다. 그 분식 날이 바로 주일이었습니다. 꼼짝없이 설렁탕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측은하셨던지, 그러면 고기를 더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수육은 별도로 돈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육을 사 주실 만큼 여유가 없으셨던지, 어머니는 당신의 설렁탕 국수를 퍼서 제 그릇에 넣어 주셨습니다. 괜히 코끝이 찡 해지면서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랑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인 채, 설렁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국수만 있는 설렁탕을 먹는 제 모습이 혹시 어머니께 측은해 보일까싶어 아주 맛있게, 깍두기를 와작 와작 씹어가며 먹었습니다. 설렁탕을 먹는 것인지, 어머니의 마음을 먹는 것이지, 그 날 저는 잊지 못 할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다시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 설렁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내는 제 설렁탕 그릇에 고기를 건져 넣어 주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어머니 같이 느껴졌습니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남편에게도 어머니가 되는 모양입니다. 이 번 가을에는 아내의 사랑을 먹듯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가을과 설렁탕의 또 하나의 추억이 남게 되었습니다. 나팔수 강승구
아내와 함께 설렁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설렁탕을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갑자기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갑게 느껴지는 상가의 불빛들, 바뀌어진 옷차림들, 냉면집보다 따뜻한 설렁탕을 찾는 사람들, 이렇듯 가을의 모습들이 연상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을과 설렁탕이란 두 단어가 연결되어졌습니다. 가을과 설렁탕, 저에게는 이 두 단어를 이어주는 추억이 있습니다.
1973년 가을, 그 때 저는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는 재수생이었습니다. 마음도 초조하고 몸도 초조할 때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가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와 떨어져 살던 저는 반가운 마음으로 설렁탕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스산한 가을날 오후, 어머니와 함께 설렁탕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재수하는 아들에게 좀 더 비싼 것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었지만, 설렁탕 한 그릇만 사 줄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지갑 사정이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설렁탕 두 그릇이 나왔습니다. 저는 숟가락으로 설렁탕을 퍼 올렸는데, 건져지는 것은 밥이 아니고 허연 밀가루 국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식당 주인에게 밥을 달라고 주문하자, 분식 날이라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쌀이 귀할 때인지라 일주일에 두 번씩 분식의 날이 있었습니다. 그 분식 날이 바로 주일이었습니다. 꼼짝없이 설렁탕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측은하셨던지, 그러면 고기를 더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수육은 별도로 돈을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육을 사 주실 만큼 여유가 없으셨던지, 어머니는 당신의 설렁탕 국수를 퍼서 제 그릇에 넣어 주셨습니다. 괜히 코끝이 찡 해지면서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랑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인 채, 설렁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국수만 있는 설렁탕을 먹는 제 모습이 혹시 어머니께 측은해 보일까싶어 아주 맛있게, 깍두기를 와작 와작 씹어가며 먹었습니다. 설렁탕을 먹는 것인지, 어머니의 마음을 먹는 것이지, 그 날 저는 잊지 못 할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다시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 설렁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내는 제 설렁탕 그릇에 고기를 건져 넣어 주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어머니 같이 느껴졌습니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남편에게도 어머니가 되는 모양입니다. 이 번 가을에는 아내의 사랑을 먹듯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가을과 설렁탕의 또 하나의 추억이 남게 되었습니다. 나팔수 강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