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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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426회 작성일Date 12-05-08 14:25본문
백발의 연인
딸 유혜가 잠깐 집에 들렀습니다. 모처럼 세 식구가 아침 식탁을 대했는데 제가 아내에게 무심코 말했습니다. ‘여보, 포크 하나 줘’ 라고 했더니 딸이 갑자기 ‘아빠, 백발의 연인을 봐야겠어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발의 연인? 그게 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서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딸은 그 방송 프로그램 본 것을 한참 설명하더니 그래도 양이 차지 않는지 아빠가 직접 보아야 하겠다고 하면서 인터넷에서 그 녹화 방송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 방영물은 KBS 방송의 정규프로인 ‘인간극장’ 중 한 편인 ‘백발의 연인’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기록물이었습니다.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 사시는 93세의 할아버지와 87세의 할머니의 살아가는 부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결혼생활 73년, 자녀들은 모두 장성하여 도시로 떠나가고, 두 노 부부만 작은 마을을 지키듯 살고 계십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에도, 시냇가에 빨래를 하러 갈 때에도, 산책을 할 때에도, 읍내 병원에 갈 때에도, 두 분은 항상 함께 다니셨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일하고, 자식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 왔지만, 두 분의 평범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73년의 세월 동안 사랑을 배워 왔다는 것입니다. 노부부가 정의 하는 사랑은 아내가 남편을 위해 밥을 짓는 것이고,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고 단순한 사랑의 정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정의는 바로 성경이 말하는 정의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고전 13:5). 두 분이 성경을 읽으시는 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경을 모른다 할 찌라도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두 분을 부부로 맺어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 사시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자신들이 누울 묘 자리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와 결혼할 것이라고.’ 아흔이 넘으신 연세의 할아버지는 아내의 사랑의 고백에 환히 웃고만 계셨습니다. 부부가 함께 마주보고 늙어가고, 늙어 가면서도 여전히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서로에게 존대어를 써가며 살아가는 노 부부의 모습이 과연 행복은 돈이나 명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저렇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반말로 포크 달라고 하던 제 모습이 무례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일진대,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목사인 제가 저 산골의 노 부부 만큼도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증거가 될 것인가 돌이켜 보았습니다.
말씀의 순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말씀의 순종입니다. 부부간에, 교회의 지체들 간에, 그리고 이웃 간에 사랑하며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도 백발의 연인들 같이 행복하게 인생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딸은 저에게 행복한 가정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
딸 유혜가 잠깐 집에 들렀습니다. 모처럼 세 식구가 아침 식탁을 대했는데 제가 아내에게 무심코 말했습니다. ‘여보, 포크 하나 줘’ 라고 했더니 딸이 갑자기 ‘아빠, 백발의 연인을 봐야겠어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발의 연인? 그게 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서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딸은 그 방송 프로그램 본 것을 한참 설명하더니 그래도 양이 차지 않는지 아빠가 직접 보아야 하겠다고 하면서 인터넷에서 그 녹화 방송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 방영물은 KBS 방송의 정규프로인 ‘인간극장’ 중 한 편인 ‘백발의 연인’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기록물이었습니다.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에 사시는 93세의 할아버지와 87세의 할머니의 살아가는 부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결혼생활 73년, 자녀들은 모두 장성하여 도시로 떠나가고, 두 노 부부만 작은 마을을 지키듯 살고 계십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에도, 시냇가에 빨래를 하러 갈 때에도, 산책을 할 때에도, 읍내 병원에 갈 때에도, 두 분은 항상 함께 다니셨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일하고, 자식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 왔지만, 두 분의 평범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73년의 세월 동안 사랑을 배워 왔다는 것입니다. 노부부가 정의 하는 사랑은 아내가 남편을 위해 밥을 짓는 것이고,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고 단순한 사랑의 정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정의는 바로 성경이 말하는 정의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고전 13:5). 두 분이 성경을 읽으시는 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경을 모른다 할 찌라도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두 분을 부부로 맺어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 사시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자신들이 누울 묘 자리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와 결혼할 것이라고.’ 아흔이 넘으신 연세의 할아버지는 아내의 사랑의 고백에 환히 웃고만 계셨습니다. 부부가 함께 마주보고 늙어가고, 늙어 가면서도 여전히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서로에게 존대어를 써가며 살아가는 노 부부의 모습이 과연 행복은 돈이나 명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저렇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반말로 포크 달라고 하던 제 모습이 무례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일진대,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목사인 제가 저 산골의 노 부부 만큼도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증거가 될 것인가 돌이켜 보았습니다.
말씀의 순종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말씀의 순종입니다. 부부간에, 교회의 지체들 간에, 그리고 이웃 간에 사랑하며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도 백발의 연인들 같이 행복하게 인생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딸은 저에게 행복한 가정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