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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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74회 작성일Date 13-05-18 11:20본문
행복한 교회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기억에 남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지구 종말의 날이 가까워 오자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서 꼭 필요한 사람 10명을 뽑아서 우주선에 태워 인류 보존을 위해 지구를 벗어나게 하기로 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인류의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열 명이 누구일까를 고심하며 선정했습니다. 첫째는 농부였습니다. 우선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으므로 농사를 지을 줄 아는 농부가 가장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회학자였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어디를 가도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사회학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사였습니다. 병이 생기면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술가, 종교인, 경제 전문가, 과학자, 체육인등 인류의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을 아홉 명까지 선정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명만 더 정하면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계속 보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마지막 한 사람으로 장애인을 선정하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인류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정하는데 왜 장애인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 지도자는 장애인을 돌보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인류라면 그런 인류를 보존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을 돌보지 않는 사회, 그 사회는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사회라는 의미의 예화입니다. 그 예화를 들으면서 과연 행복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 라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장애인을 돌보지 않고 우리만의 행복을 누리면 그것이 행복한 교회일까? 나는 참 좋고 행복한데 나로 인해 그 행복을 공급 받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행복이 아닐 것 입니다.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 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행20:35) 나 자신만을 위한 신앙과 교회가 된다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우리가 보살펴 줌으로써 행복해 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에 장애 지체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교회가 이기적인 교회가 아니라 섬기는 교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장애 지체들을 도와서 부품 조립작업을 같이 해주고, 장애 지체들이 물품을 정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이 우리에게 이타적(利他的)인 신앙훈련이 됩니다. 장애지체들과 대화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그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작은 일에도 감동 받는 장애 지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더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장애 지체들은 우리의 축복이며 보배입니다. 헨리 나우엔이 말했듯이, 내가 장애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자 때문에 내가 행복 해지니 그가 나를 돕든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장애 지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 지체들 때문에 행복한 교회 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기억에 남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지구 종말의 날이 가까워 오자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서 꼭 필요한 사람 10명을 뽑아서 우주선에 태워 인류 보존을 위해 지구를 벗어나게 하기로 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인류의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열 명이 누구일까를 고심하며 선정했습니다. 첫째는 농부였습니다. 우선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으므로 농사를 지을 줄 아는 농부가 가장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회학자였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어디를 가도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사회학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사였습니다. 병이 생기면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술가, 종교인, 경제 전문가, 과학자, 체육인등 인류의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을 아홉 명까지 선정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명만 더 정하면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계속 보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마지막 한 사람으로 장애인을 선정하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인류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정하는데 왜 장애인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 지도자는 장애인을 돌보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인류라면 그런 인류를 보존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을 돌보지 않는 사회, 그 사회는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사회라는 의미의 예화입니다. 그 예화를 들으면서 과연 행복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 라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장애인을 돌보지 않고 우리만의 행복을 누리면 그것이 행복한 교회일까? 나는 참 좋고 행복한데 나로 인해 그 행복을 공급 받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행복이 아닐 것 입니다.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 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행20:35) 나 자신만을 위한 신앙과 교회가 된다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우리가 보살펴 줌으로써 행복해 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에 장애 지체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돌보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교회가 이기적인 교회가 아니라 섬기는 교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장애 지체들을 도와서 부품 조립작업을 같이 해주고, 장애 지체들이 물품을 정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이 우리에게 이타적(利他的)인 신앙훈련이 됩니다. 장애지체들과 대화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그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작은 일에도 감동 받는 장애 지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더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장애 지체들은 우리의 축복이며 보배입니다. 헨리 나우엔이 말했듯이, 내가 장애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자 때문에 내가 행복 해지니 그가 나를 돕든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장애 지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 지체들 때문에 행복한 교회 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