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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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70회 작성일Date 13-04-27 14:28본문
장례식 단상
형제의 부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로마서 11:36 말씀을 유족들과 함께한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인생이란 참 간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죽는 것입니다. 죽는 것 또한 하나의 점과 같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태어나는 점과 죽는 점을 잇는 선 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점과 점을 잇는 선과 같습니다. 선은 아무리 길어도 선 입니다. 선이 옆으로 퍼져 나가도 선 입니다. 선은 드디어는 점으로 마칩니다. 살아갈수록 인생이란 마지막 점을 향해 가는 선과 같은 것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선을 넘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보기 원하십니다. 그것은 높이와 깊이가 있는 입체의 세계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 2차원의 선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입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인생은 3차원의 입체를 살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인생은 기쁨 뿐 아니라, 슬픔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압니다. 즐거움 뿐 아니라 고통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기쁨과 즐거움만 있기를 원한다면 2차원의 단조로운 선과 같이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쁨의 높이 뿐 아니라, 슬픔의 깊이도 겪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입체적인 인생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깊이와 높이를 아는 만큼 하나님의 충만함을 더욱 알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성도의 인생은 선이 아니고 입체입니다. 성공은 좋고 실패는 나쁜 단답식이 아닌 깊이와 높이가 있는 더 풍성한 답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경험 되어지는 하나님의 충만함이 세상의 단순 논리를 뛰어넘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보게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실패의 상징이지만, 성도에게는 승리의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그 고난 때문에 우리의 소망은 더욱 분명해 집니다.
장례식은 하나의 점을 찍듯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온 인생은 점이 아닙니다. 선도 아닙니다. 그것은 입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높이와 깊이가 있는 입체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복되다고 하십니다.(계14:13)
아버지와 이 땅에서 이별하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으시기를 기도드리며,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입체적으로 맛보며 사는 나날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
형제의 부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로마서 11:36 말씀을 유족들과 함께한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인생이란 참 간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죽는 것입니다. 죽는 것 또한 하나의 점과 같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태어나는 점과 죽는 점을 잇는 선 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점과 점을 잇는 선과 같습니다. 선은 아무리 길어도 선 입니다. 선이 옆으로 퍼져 나가도 선 입니다. 선은 드디어는 점으로 마칩니다. 살아갈수록 인생이란 마지막 점을 향해 가는 선과 같은 것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선을 넘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보기 원하십니다. 그것은 높이와 깊이가 있는 입체의 세계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 2차원의 선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입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인생은 3차원의 입체를 살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인생은 기쁨 뿐 아니라, 슬픔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압니다. 즐거움 뿐 아니라 고통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기쁨과 즐거움만 있기를 원한다면 2차원의 단조로운 선과 같이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쁨의 높이 뿐 아니라, 슬픔의 깊이도 겪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입체적인 인생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깊이와 높이를 아는 만큼 하나님의 충만함을 더욱 알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성도의 인생은 선이 아니고 입체입니다. 성공은 좋고 실패는 나쁜 단답식이 아닌 깊이와 높이가 있는 더 풍성한 답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경험 되어지는 하나님의 충만함이 세상의 단순 논리를 뛰어넘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보게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실패의 상징이지만, 성도에게는 승리의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그 고난 때문에 우리의 소망은 더욱 분명해 집니다.
장례식은 하나의 점을 찍듯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온 인생은 점이 아닙니다. 선도 아닙니다. 그것은 입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높이와 깊이가 있는 입체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복되다고 하십니다.(계14:13)
아버지와 이 땅에서 이별하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으시기를 기도드리며,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입체적으로 맛보며 사는 나날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