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을 지나 사려니 숲을 거쳐 한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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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1회 작성일Date 26-03-31 17:23본문
제주 살이를 하며 길을 나서면,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 적힌 이정표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섬 특유의 낯선 지명이겠거니 하며 가벼이 넘겼지만, 같은 길을 반복해 오가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추적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하늘을 향한 제주 사람들의 간절한 신심(信心)이 오롯이 새겨진 신앙의 고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한라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영실(靈室)’ 계곡과 ‘사려니 숲’은 제 마음을 깊은 묵상으로 이끌었습니다.
먼저 ‘한라산(漢拏山)’의 의미를 새롭게 마음에 담아봅니다. 제주의 중심에 우뚝 서서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이 산의 이름에서 ‘한(漢)’은 은하수를, ‘라(拏)’는 붙잡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손을 뻗으면 능히 은하수를 붙잡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한 지리적 높이를 넘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성한 통로라는 영적인 갈망이 서려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신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날마다 영적인 한라산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임을 느낍니다. 이 사순절의 시기에 ‘영실’과 ‘사려니’를 지나 ‘한라’로 향하는 길은,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영실’은 한라산 남서쪽으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골짜기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그 골짜기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탓에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거처’라 하여 ‘영실(靈室)’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산의 정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이 깊은 골짜기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줍니다. 비록 낮고 험한 골짜기일지라도, 그곳이 곧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지성소가 된다는 확신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겪는 낮아짐의 고난이 오히려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고난의 깊이가 곧 믿음의 높이가 되는 역설의 장소, 그곳이 바로 ‘영실’입니다. 우리의 시련과 환난은 머물러야 할 종착역이 아니라, 우리를 ‘성령의 거처(靈室)’인 견고한 반석으로 빚어내어 그 산으로 이끄시는 거룩한 과정인 것입니다.
그 골짜기를 지나 이제 ‘사려니 숲’길을 걷습니다. ‘사려니’는 제주 방언으로 ‘살안이’ 혹은 ‘살안길’이라 하여, ‘사람이 살며 조심히 다녀야 하는 거룩한 기운이 감도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저 아름다운 숲이 아니라 신의 숨결이 깃든 곳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외의 장소인 셈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출 3:5)” 하신 말씀이 이 길 위에서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 앞(Coram Deo)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고도 경건한 경외함으로 채워져야 하는지를 이 숲길은 묻고 있습니다.
제주 곳곳에 이토록 신령한 지명이 많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신을 향한 본능적인 염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순절은, 그 모든 염원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확인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제 물리적인 한라산에 오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러 오신 주님이 바로 우리의 ‘한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낮고 천한 곳까지 내려오신 주님을 영접한 삶이 곧 ‘영실’이요, 그 주님과 동행하며 걷는 모든 일상이 곧 ‘사려니 숲’이 됩니다. 이번 사순절, 주님을 따르기로 새롭게 결단하는 우리를 통해 제주의 모든 지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완성되기를, 그리하여 이 땅 가득 주님의 영광이 머물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먼저 ‘한라산(漢拏山)’의 의미를 새롭게 마음에 담아봅니다. 제주의 중심에 우뚝 서서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이 산의 이름에서 ‘한(漢)’은 은하수를, ‘라(拏)’는 붙잡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손을 뻗으면 능히 은하수를 붙잡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한 지리적 높이를 넘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성한 통로라는 영적인 갈망이 서려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신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날마다 영적인 한라산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임을 느낍니다. 이 사순절의 시기에 ‘영실’과 ‘사려니’를 지나 ‘한라’로 향하는 길은,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영실’은 한라산 남서쪽으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골짜기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그 골짜기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탓에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거처’라 하여 ‘영실(靈室)’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산의 정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이 깊은 골짜기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줍니다. 비록 낮고 험한 골짜기일지라도, 그곳이 곧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지성소가 된다는 확신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겪는 낮아짐의 고난이 오히려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고난의 깊이가 곧 믿음의 높이가 되는 역설의 장소, 그곳이 바로 ‘영실’입니다. 우리의 시련과 환난은 머물러야 할 종착역이 아니라, 우리를 ‘성령의 거처(靈室)’인 견고한 반석으로 빚어내어 그 산으로 이끄시는 거룩한 과정인 것입니다.
그 골짜기를 지나 이제 ‘사려니 숲’길을 걷습니다. ‘사려니’는 제주 방언으로 ‘살안이’ 혹은 ‘살안길’이라 하여, ‘사람이 살며 조심히 다녀야 하는 거룩한 기운이 감도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저 아름다운 숲이 아니라 신의 숨결이 깃든 곳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경외의 장소인 셈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출 3:5)” 하신 말씀이 이 길 위에서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 앞(Coram Deo)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고도 경건한 경외함으로 채워져야 하는지를 이 숲길은 묻고 있습니다.
제주 곳곳에 이토록 신령한 지명이 많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신을 향한 본능적인 염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순절은, 그 모든 염원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확인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제 물리적인 한라산에 오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러 오신 주님이 바로 우리의 ‘한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낮고 천한 곳까지 내려오신 주님을 영접한 삶이 곧 ‘영실’이요, 그 주님과 동행하며 걷는 모든 일상이 곧 ‘사려니 숲’이 됩니다. 이번 사순절, 주님을 따르기로 새롭게 결단하는 우리를 통해 제주의 모든 지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완성되기를, 그리하여 이 땅 가득 주님의 영광이 머물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