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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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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2회 작성일Date 26-03-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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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심각할 정도의 오해를 갖게 만듭니다. 흡사 육체는 의미 없고, 영혼만 중요하다고 여기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헬라 철학의 주장처럼 이 세상의 때가 묻은 더러운 육체는 썩어 없어질 것이나, 영혼은 불멸한다는 사상을 옹호하는 것처럼 느껴져 혼돈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디에도 사람의 육체는 무의미하며, 영만이 거룩하다라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는 말씀은 그 자체로 모순이 될 것입니다. 무익한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영광이라는 단어는 물론, 은혜와 진리 또한 결코 함께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이 영과 육의 이분법은 무슨 의미를 전하려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문맥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문맥을 벗어난 말씀 해석은 하나님의 의도를 해체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영과 육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오병이어’라는 또 하나의 표적 이야기 속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의 양식을 공급해 주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왕으로 삼으려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뒤로하고 단호히 떠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표적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오병이어 사건이라는 표적은 마침내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시며, 그 떡을 먹는 다는 것은 곧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아는 것”으로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는 것은 육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생각, 믿음 없는 차원, 성령 없이 이해하려는 태도로 육체적인 껍질에 얽매인 사고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영과 육의 구별은 생명을 주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며, 인간적인 계산과 물리적인 이해로는 그 생명을 알 수 없고,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요한복음 3: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을 통해 거듭남의 의미를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성령으로 난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며, 그 성령의 조명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이 영생의 길”이라는 의미는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서는 떠나시지만,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께 있으니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믿고 아는 사람들과는 함께하십니다. 이 믿음이 영에 속한 사람임과 이미 영생 안에 사는 사람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제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