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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목회단상

내려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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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5회 작성일Date 26-03-31 17:19

본문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서 가장 악명 높은 도시의 대명사를 들라고 한다면 단연 소돔과 고모라일 것입니다(창 18:20; 신 29:23; 사 13:19; 렘 49:18; 암 4:11; 마 10:15; 벧후 2:6; 유 1:7). 그 도시들의 죄악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0-21)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신데 그럼에도 직접 내려오셔서 그 진의를 정확하게 더 살펴보려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아셨다는 것은 더 이상 확인해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보다 더 확실한 확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내가 이제 내려가서,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는 말씀 속에는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목적이심이 분명합니다. 혹여 마지막 순간에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마음 중심에 파편으로라도 남아 있어 그것이 돌이킴의 씨라도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하심으로 “내가 다시 한 번 더 살펴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엿보입니다. 그런데 그 애절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어놓고 있다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의 중요한 본질입니다.
  천사들은 소돔으로 향하게 하시고, 정작 “내가 내려가서 직접 보려하노라”고 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 앞에 그대로 서 계실까요? 아브라함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간절한 바램으로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중재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택된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면 얼마든지 도전하라고 아브라함 앞에 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밤새워,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께 도전하지만, 남의 일에는 적당히 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걸고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간구합니다. 티끌과 재 같은 인생이 감히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여섯 번이나 조건을 바꾸어 가며 간구합니다(창 18:27). 그런데 하나님이 기꺼이 들으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자녀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에 심판을 늦추시기를 간절히 소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이 하루 같이 한 사람도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주께서 오시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창 19:2)는 말씀은 곧 심판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말의 동정심을 기대하시며, 그 밤에 한 사람이라도 찾으시려는 간절한 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멸망이 아닌, 회복의 가능성을 보시고 또 천년을 기다리시려는 마음일 것입니다. 매일을 마라나타로 기다리되 그 일상의 하루가 천년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품는 것입니다(빌 2:5). 바로 친히 내려오셔서 밤새워 살피시는 그 마음속에 세상이 사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