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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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947회 작성일Date 23-11-28 11:55본문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대림절을 눈앞에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는 명령을 되새겨봅니다.
“왜 하필 오시는 길에 가시는 무거운 십자가를 말합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심의 의미는 가시는 길속에 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여정에서 십자가 길의 시작이 ‘자기부인’부터라는 점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는 극도의 자기 PR 시대(Public Relations의 약자로 ‘자기홍보’를 뜻하는 일본식 영어)로 자신의 장점을 널리 알려서 인지도를 높일 때 가치를 인정받고,
그로 인해 수익 또한 더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며 겪는 일들 속에서 그 시초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들이 함께 외식을 하려 할 때 서로의 식성이 다르기에 선택하는 음식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이 피자를 선택하면 부모는 그 음식이 별반 선호하는 것이 아님에도 기꺼이 아이들의 선택을 따라 피자집으로 향합니다.
그 속에 아주 작은 씨지만 부모의 ‘자기부인’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부인의 이유는 명백히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로 가셨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 뒤를 따릅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송명희씨가 작사하고, 김석균씨가 작곡하였으며, 다윗과 요나단의 전태식씨가 노래한 ‘쓴잔’이라는 복음송가가 있습니다.
가사 한 절 한 절이 구구절절 마음 깊숙이 파고 들어오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생하게 우리 삶 속에서 느끼게 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쓴잔을 모르리
주님의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통을 모르리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 것이며 주님의 괴로움은 내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내 보물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리라
가사를 새겨보면 삶 속에서 겪는 우리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들이 우리 주님의 쓴잔인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한다는 고백으로 다가옵니다.
비록 무게감에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다른 이로 인해 겪는 고통, 좌절, 모멸, 수치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와 깊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부인은 이렇게 가볍게는 자녀들에게 외식의 선택권을 양보하는 것으로부터 마침내는 자존감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모멸과 수치를 감수하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그 기초는 바로 동일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를 조금 바꾸어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그 사랑 모르리”로 개사를 하고 싶어집니다.
김 재 구 목사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는 명령을 되새겨봅니다.
“왜 하필 오시는 길에 가시는 무거운 십자가를 말합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심의 의미는 가시는 길속에 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여정에서 십자가 길의 시작이 ‘자기부인’부터라는 점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는 극도의 자기 PR 시대(Public Relations의 약자로 ‘자기홍보’를 뜻하는 일본식 영어)로 자신의 장점을 널리 알려서 인지도를 높일 때 가치를 인정받고,
그로 인해 수익 또한 더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며 겪는 일들 속에서 그 시초를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들이 함께 외식을 하려 할 때 서로의 식성이 다르기에 선택하는 음식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이 피자를 선택하면 부모는 그 음식이 별반 선호하는 것이 아님에도 기꺼이 아이들의 선택을 따라 피자집으로 향합니다.
그 속에 아주 작은 씨지만 부모의 ‘자기부인’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부인의 이유는 명백히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로 가셨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 뒤를 따릅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송명희씨가 작사하고, 김석균씨가 작곡하였으며, 다윗과 요나단의 전태식씨가 노래한 ‘쓴잔’이라는 복음송가가 있습니다.
가사 한 절 한 절이 구구절절 마음 깊숙이 파고 들어오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생하게 우리 삶 속에서 느끼게 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쓴잔을 모르리
주님의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통을 모르리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 것이며 주님의 괴로움은 내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내 보물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리라
가사를 새겨보면 삶 속에서 겪는 우리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들이 우리 주님의 쓴잔인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한다는 고백으로 다가옵니다.
비록 무게감에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다른 이로 인해 겪는 고통, 좌절, 모멸, 수치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와 깊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부인은 이렇게 가볍게는 자녀들에게 외식의 선택권을 양보하는 것으로부터 마침내는 자존감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모멸과 수치를 감수하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그 기초는 바로 동일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를 조금 바꾸어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그 사랑 모르리”로 개사를 하고 싶어집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