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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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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98회 작성일Date 13-11-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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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아이
  수요일의 아이 (Wednesday’s child)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외롭다는 가사의 노래입니다. 더욱이 11월의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더 외롭습니다. 11월은 아무것도 없는 No (아무것도 없는) vember 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생일만 되면 내가 11월의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특히 젊은 학창시절 어느 생일 아침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저의 생일이라는 것을 미역국도 없는 식탁에서 새삼 느꼈을 때, 수요일의 아이는 정말 외롭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제목  초라한 생일
      콧노래라도 부르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너의 초라한 생일에,

      휘파람이라도 부르렴
      아무도 찾아 와 주지 않는 너의 외로운 생일에,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었다고
      늙으신 어머니는 말씀 하셨지.
      (후략)
  나이가 든 후에도 11월이 되면 가끔 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그러면 암울했던 70년대의 을씨년한 가을교정, 캠퍼스가 빛바랜 흑백 사진과 같이 제 마음에 떠오릅니다. 그리고 장발의 머리에 때 묻은 바바리코트를 입고 불룩한 책가방을 옆에 낀 한 젊은 학생이 사진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한 젊은이의 표정에서 절망을 읽습니다. 저의 옛 모습입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욕망이 엇갈리던 시절, 정의라는 이름으로 던지던 비난의 돌팔매질, 현실이 두려워서 현실을 회피하던 비겁함, 그 모든 것이 절망이었고 외로움이었습니다. 수요일의 아이는 외로움을 합리화하는 배경 음악이었습니다.
  또 다시 11월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요일의 아이는 이제 절망과 외로움을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절망이 있었기에 소망이 필요했고, 외로움이 있었기에 사랑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절망하는 자에게 소망으로 오셨고, 외로운 사람에게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혹시 예수님도 수요일의 아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외로움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예수님이 필요한 수요일의 아이는 아닌지요?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