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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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285회 작성일Date 14-07-05 09:44본문
카타콤
약 삼십 여 년 전 읽었던 책 중에 ‘카타콤의 순교자’ 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세기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들에게 몸이 찢겨 죽던 초대교회의 박해 받는 성도들의 순교사를 소설로 쓴 책입니다. 죽은 성도의 시체를 묻은 곳이 카타콤이라고 하는 지하 공동묘지입니다. 그 당시 카타콤은 로마 외곽지에 있는 공동묘지였는데 그 수가 수 백 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곳은 여섯 곳인데 그 중의 하나인 산 칼리스토 (St. Callisto) 지역의 카타콤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안내자를 따라 지하 무덤에 들어섰을 때 삼십 여 년 전 읽었던 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머리가 없어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동료 성도의 시체를 로마 시내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이 곳 묘지로 옮기기 위해 성도들은 경기장을 밤에 숨어들어 가야 했습니다. 시신을 짊어지고 이곳까지 수 십 킬로미터 의 거리를 옮겨와서 지하 무덤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 벽에 ‘부활’ 이라 글씨를 새겨 놓았습니다. 실제로 카타콤 벽에 새겨져 있는 여러 가지의 글씨들과 비둘기, 양, 물고기 등의 그림들, 그리고 XP(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약자) 라는 암호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갑자기 무덤 한 구석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어졌습니다. 이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 나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져 왔구나 하는 감격 때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이 모두 죽어 한꺼번에 무덤에 묻힌 자리도 있었고,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합동으로 묻혀 있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흙을 만져 보았습니다. 죽은 성도들의 몸이 이천년의 시간을 통해 흙으로 변해 버린 그 흙은 오히려 부드러웠습니다. 시신을 옆에 두고 작은 동굴 속에서 성도의 부활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신앙 선배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언어가 아니라 외마디의 호소로 들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이런 고백이 흘러 나왔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구나’!
그저 살아 있음이 아니고 신앙인으로 살아 있음이 기적이라는 것을 그 곳에서 실감 했습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내가 기독교인으로써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1세기 로마가 아닌 이 시대,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인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 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소리 내어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도, 성경을 마음껏 읽는 것도 기적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제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입니다. 카타콤은 예수님을 믿고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를 깨우쳐 주는 자리였습니다. 카타콤에서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일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성도의 자리가 매일의 카타콤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5:31) 나팔수 강 승 구
약 삼십 여 년 전 읽었던 책 중에 ‘카타콤의 순교자’ 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세기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들에게 몸이 찢겨 죽던 초대교회의 박해 받는 성도들의 순교사를 소설로 쓴 책입니다. 죽은 성도의 시체를 묻은 곳이 카타콤이라고 하는 지하 공동묘지입니다. 그 당시 카타콤은 로마 외곽지에 있는 공동묘지였는데 그 수가 수 백 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곳은 여섯 곳인데 그 중의 하나인 산 칼리스토 (St. Callisto) 지역의 카타콤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안내자를 따라 지하 무덤에 들어섰을 때 삼십 여 년 전 읽었던 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머리가 없어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동료 성도의 시체를 로마 시내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이 곳 묘지로 옮기기 위해 성도들은 경기장을 밤에 숨어들어 가야 했습니다. 시신을 짊어지고 이곳까지 수 십 킬로미터 의 거리를 옮겨와서 지하 무덤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 벽에 ‘부활’ 이라 글씨를 새겨 놓았습니다. 실제로 카타콤 벽에 새겨져 있는 여러 가지의 글씨들과 비둘기, 양, 물고기 등의 그림들, 그리고 XP(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약자) 라는 암호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갑자기 무덤 한 구석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어졌습니다. 이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 나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져 왔구나 하는 감격 때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이 모두 죽어 한꺼번에 무덤에 묻힌 자리도 있었고,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합동으로 묻혀 있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흙을 만져 보았습니다. 죽은 성도들의 몸이 이천년의 시간을 통해 흙으로 변해 버린 그 흙은 오히려 부드러웠습니다. 시신을 옆에 두고 작은 동굴 속에서 성도의 부활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신앙 선배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언어가 아니라 외마디의 호소로 들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이런 고백이 흘러 나왔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구나’!
그저 살아 있음이 아니고 신앙인으로 살아 있음이 기적이라는 것을 그 곳에서 실감 했습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내가 기독교인으로써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1세기 로마가 아닌 이 시대,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인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 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소리 내어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도, 성경을 마음껏 읽는 것도 기적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제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입니다. 카타콤은 예수님을 믿고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를 깨우쳐 주는 자리였습니다. 카타콤에서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일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성도의 자리가 매일의 카타콤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5:31)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