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수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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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204회 작성일Date 14-10-27 09:57본문
비오는 수요일 아침
수요일 아침 발인예배의 인도를 부탁 받았습니다. 수요일은 수요예배가 있는 날입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예배입니다. 그중에서도 목사에게는 설교가 가장 중요합니다. 목사는 예배 전에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설교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정리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예배가 있는 날 아침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예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요일 아침에 발인예배 인도를 부탁 받고 나니 갈등이 되었습니다. 교구 목사를 보내고 나는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발인예배를 부탁해 온 자매의 편지에는 제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자매의 편지를 읽으면서 지난주일 설교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완성하시러 십자가를 지시고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도중에 여리고성의 작은 소자의 소리에 걸음을 멈추십니다.(막10:49) 목사에게 설교가 중요하지만,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배 전이라도 내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요일 아침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쓸쓸한 죽음과 같이 비가 부슬 부슬 내렸습니다. 향년 육십 세의 남자였습니다. 상주는 두 딸이었고, 저에게 장례예배를 부탁한 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둘째 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연락이 되지 않고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수년간 누워 계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조문객이 많지 않은 장례식장에는 우리 성도들이 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소천하신 분은 병상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고 기다릴찌니라’ 로마서 말씀으로 소망의 구원을 전했습니다. (롬8:24-25) 장례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 청년 자매에게 감사가 되었습니다. 외로울 때 우리 교회를 생각했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 교회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비난합니다. 사랑이 없고 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때 마다 우리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그 비난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또 한 편 생각해 보면 세상 사람들의 교회에 대한 비난은 그만큼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듯이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까 실망도 있고 비난도 있을 것입니다.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교회의 할 일을 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우리가 주님의 위로를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울 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슬플 때 같이 해 주는 것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이 찾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람들입니다. (롬12:15) 비오는 수요일 아침에 우리가 교회라는 것을 주님께서 확인 시켜주셨습니다. 작은 소자의 소리를 듣고 멈추어 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
수요일 아침 발인예배의 인도를 부탁 받았습니다. 수요일은 수요예배가 있는 날입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예배입니다. 그중에서도 목사에게는 설교가 가장 중요합니다. 목사는 예배 전에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설교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정리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예배가 있는 날 아침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예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요일 아침에 발인예배 인도를 부탁 받고 나니 갈등이 되었습니다. 교구 목사를 보내고 나는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발인예배를 부탁해 온 자매의 편지에는 제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자매의 편지를 읽으면서 지난주일 설교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완성하시러 십자가를 지시고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도중에 여리고성의 작은 소자의 소리에 걸음을 멈추십니다.(막10:49) 목사에게 설교가 중요하지만,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교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배 전이라도 내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요일 아침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쓸쓸한 죽음과 같이 비가 부슬 부슬 내렸습니다. 향년 육십 세의 남자였습니다. 상주는 두 딸이었고, 저에게 장례예배를 부탁한 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둘째 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연락이 되지 않고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수년간 누워 계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조문객이 많지 않은 장례식장에는 우리 성도들이 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소천하신 분은 병상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고 기다릴찌니라’ 로마서 말씀으로 소망의 구원을 전했습니다. (롬8:24-25) 장례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 청년 자매에게 감사가 되었습니다. 외로울 때 우리 교회를 생각했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 교회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비난합니다. 사랑이 없고 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때 마다 우리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그 비난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또 한 편 생각해 보면 세상 사람들의 교회에 대한 비난은 그만큼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듯이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까 실망도 있고 비난도 있을 것입니다.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교회의 할 일을 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우리가 주님의 위로를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울 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슬플 때 같이 해 주는 것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이 찾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람들입니다. (롬12:15) 비오는 수요일 아침에 우리가 교회라는 것을 주님께서 확인 시켜주셨습니다. 작은 소자의 소리를 듣고 멈추어 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