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와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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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137회 작성일Date 14-09-27 09:32본문
신비와 이성
며칠 전 동영상 한 편을 소개받았습니다. 제목은 ‘Heaven is for real’ (천국은 실제) 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 가족과 가진 미국 TV 방송 인터뷰 영상이었습니다. 십 대 소년이 3 분 동안 천국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대담으로 꾸민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신비와 이성이 공존하는 것이 신앙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비만 있으면 미신이 되는 것이고, 이성만 있어도 철학이나 심리학은 되겠지만 신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신앙이란 신비(神秘)와 이성(理性)을 균형 있게 조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의 세계를 이성으로 추적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신비가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 추적하는 것이지 존재 하지 않는 신비를 이성으로 추적해 가는 것은 환상을 좇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소년이 보았다는 천국을 이성으로 추적해 보는 것은 신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회의 김명현 교수(전 한동대 교수)의 강의에 의하면 기적이란 높은 차원에서는 일상인 일 들이 낮은 차원에서 볼 때에는 기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2차원에 사는 바퀴 벌레는 기어서만 다니지만, 3차원의 메뚜기는 높이 뛰어 올라가기도 합니다. 메뚜기가 뛰어 올라가면 바퀴벌레는 메뚜기가 없어졌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메뚜기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면 바퀴 벌레에게는 기적이 일어 난 것 입니다. 그러나 바퀴벌레나 메뚜기나 모두 같은 방 안에 있습니다. 다만 차원이 다를 뿐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사는 공간에 같이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 입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들어간다면 멀리 가지 않아도 천국을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공간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퀴벌레와 메뚜기가 같은 방에 있듯이 말입니다. 차원이라는 이성으로 천국이라는 신비를 추적해 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성적 이세상은 또한 보이지 않는 신비의 천국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관념이나 심리 상태가 아니라 공간적인 실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엘리사도 그를 둘러 싼 천사들의 불 병거를 보았습니다. (왕하6:17) 요한 사도도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록하였습니다. (계22장) 따라서 천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 아니, 우리가 있는 공간에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차원이 달라서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천국이 신비가 아니라 차원이 신비일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다루고 있는 차원이 신비이고 신학에서 다루고 있는 천국이 오히려 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이성으로 신비를 추적해서 신비의 세계를 이성적 사고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지 이성에서 신비를 넘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동영상 한 편을 소개받았습니다. 제목은 ‘Heaven is for real’ (천국은 실제) 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 가족과 가진 미국 TV 방송 인터뷰 영상이었습니다. 십 대 소년이 3 분 동안 천국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대담으로 꾸민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신비와 이성이 공존하는 것이 신앙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비만 있으면 미신이 되는 것이고, 이성만 있어도 철학이나 심리학은 되겠지만 신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신앙이란 신비(神秘)와 이성(理性)을 균형 있게 조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의 세계를 이성으로 추적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신비가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 추적하는 것이지 존재 하지 않는 신비를 이성으로 추적해 가는 것은 환상을 좇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소년이 보았다는 천국을 이성으로 추적해 보는 것은 신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회의 김명현 교수(전 한동대 교수)의 강의에 의하면 기적이란 높은 차원에서는 일상인 일 들이 낮은 차원에서 볼 때에는 기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2차원에 사는 바퀴 벌레는 기어서만 다니지만, 3차원의 메뚜기는 높이 뛰어 올라가기도 합니다. 메뚜기가 뛰어 올라가면 바퀴벌레는 메뚜기가 없어졌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메뚜기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면 바퀴 벌레에게는 기적이 일어 난 것 입니다. 그러나 바퀴벌레나 메뚜기나 모두 같은 방 안에 있습니다. 다만 차원이 다를 뿐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사는 공간에 같이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 입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들어간다면 멀리 가지 않아도 천국을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공간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퀴벌레와 메뚜기가 같은 방에 있듯이 말입니다. 차원이라는 이성으로 천국이라는 신비를 추적해 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성적 이세상은 또한 보이지 않는 신비의 천국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관념이나 심리 상태가 아니라 공간적인 실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엘리사도 그를 둘러 싼 천사들의 불 병거를 보았습니다. (왕하6:17) 요한 사도도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록하였습니다. (계22장) 따라서 천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 아니, 우리가 있는 공간에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차원이 달라서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천국이 신비가 아니라 차원이 신비일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다루고 있는 차원이 신비이고 신학에서 다루고 있는 천국이 오히려 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이성으로 신비를 추적해서 신비의 세계를 이성적 사고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지 이성에서 신비를 넘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