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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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070회 작성일Date 14-09-13 13:18본문
사귐의 기쁨
금 년 추석에는 오랜만에 어머니 성묘 차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변의 풍경이 추석 기분을 더욱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줄지어가는 차량 행렬, 휴게소 마다 명절을 쇠러 가는 사람들의 들 뜬 모습들이 생동감 있게 보였습니다. 상경 길은 예상만큼 지연되지는 않았습니다. 고속버스 전용도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서울에서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어머니 산소, 형님들 댁 방문, 조카들, 손자들, 친구들, 또 만나봐야 할 사람들, 이런 저런 계획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을 떠난지 이미 오랜 데도 아직 서울에 가면 들러 보아야 할 곳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기야 사람 사는 것이 사람 만나는 것이니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항상 만나야 하는 사람들, 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난 주 설교 말씀 중 ‘너희와 우리의 사귐’ 이라는 구절이 자꾸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요일 1:3) 살다 보면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사람과의 사귐을 위해 우리와 사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귀고 싶은 사람만 사귄다면 그것은 예수님과의 사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만나고 싶지 않고 사귀기가 어려운 사람과도 사귐을 가지려 할 때, 예수님과 사귐의 능력을 맛보게 됩니다. 그 능력은 ‘기쁨의 충만’입니다. (요일 1:4) 우리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의 사귐에서 얻는 기쁨은 내가 만들어 내는 기쁨 이지만 우리가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사귐에서 얻는 기쁨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사귀고 싶은 사람들과의 사귐은 상대적 기쁨이지만, 우리가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사귐은 절대적 기쁨을 가져 옵니다. 절대적 기쁨이란 상대방의 반응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따라서 이 기쁨은 상대가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이 기쁨을 누리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대적자들과의 부딪힘 속에서도 예수님은 항상 그들과 사귐을 가지려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기쁨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살전 5:16) 그리고 이 기쁨은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사귐은 너희와 우리의 사귐으로 번져 나갑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스는 서울에 도착하였고 바쁜 추석 일정이 시작 되었습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삶으로 살아내어야 설교의 권위가 선다는 말을 따라 너희와 우리의 사귐을 위해 부지런히 다닌 추석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쁨이 충만한 것인지(?), 감사할 뿐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