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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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56회 작성일Date 15-02-03 10:58본문
종교의 역할
과학의 역할은 자연 세계를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더 편리한 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술의 역할은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淨化)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생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열어 줍니다. 따라서 과학보다 예술을 더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생활이나 마음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는데, 그것이 의식(意識)입니다. 과학이 주는 편리함을 사용하는 되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 없습니다. 써 보고 나서 좋으면 계속 사용하는 것입니다. 과학에는 경험이 중요하지 의식의 전환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술도 감정의 영역에 도움을 줄 뿐 의식의 변화에는 큰 영향이 없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나도 저 그림속의 꽃같이 아름답게 살아야지 라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을 뿐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경험이나 감정을 뛰어 넘습니다. 종교가 경험이나 감정의 영역만을 다룬다면 종교는 과학이나 예술의 영향력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생활의 편리함이나 감정의 치유를 위해 쓰일 때는 종교의 역할이 아니라 건강법이나 상담학의 한 부류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이 종교로써의 역할을 할 때에는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버려야 하는 것, 있어야 하는 것, 취해야 하는 것, 행하여야 하는 것들에 대한 결단과 행동이 결과로 나타납니다. 이 때 성경이 종교의 역할을 올바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현대는 초스피드 인터넷 세계가 되었습니다. 과학이 주는 편리함입니다. 그러나 이 편리함이 수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폭탄 제조방법, 마약 제조방법, 총을 3D 프린터에서 만들어 내고, 음란, 도박, 자살사이트 등이 무분별하게 열려져 있습니다. 폭력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모방 심리를 일으키고, IS대원 모집을 인터넷을 통해 소개받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항해서 예술을 통하여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마음에 심어 주어 사람을 순하게 하려는 노력들입니다. 그러나 예술이 줄 수 있는 영향은 감정의 변화일 뿐 의식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의식의 변화만이 요즈음의 사회 병리현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의식이 변해 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규제나 처벌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종교에게만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절실히 느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주장 때문에 종교로써의 책임마저도 잊고 있는 때가 많습니다. 마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라는 광고 문안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가구 아닌 것에 침대를 꼽았다고 하는 우스갯소리와 같이 교회는 종교 이상의 생명이라는 뜻이지 종교와 다른 어떤 무엇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요즘의 뉴스는 교회가 종교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하는 때임을 말해주는 하나님의 음성과 같습니다. 대책 없이 문제만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소리 속에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을 품은 종교가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
과학의 역할은 자연 세계를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더 편리한 생활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술의 역할은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淨化)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생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열어 줍니다. 따라서 과학보다 예술을 더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생활이나 마음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는데, 그것이 의식(意識)입니다. 과학이 주는 편리함을 사용하는 되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 없습니다. 써 보고 나서 좋으면 계속 사용하는 것입니다. 과학에는 경험이 중요하지 의식의 전환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술도 감정의 영역에 도움을 줄 뿐 의식의 변화에는 큰 영향이 없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나도 저 그림속의 꽃같이 아름답게 살아야지 라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을 뿐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경험이나 감정을 뛰어 넘습니다. 종교가 경험이나 감정의 영역만을 다룬다면 종교는 과학이나 예술의 영향력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생활의 편리함이나 감정의 치유를 위해 쓰일 때는 종교의 역할이 아니라 건강법이나 상담학의 한 부류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이 종교로써의 역할을 할 때에는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버려야 하는 것, 있어야 하는 것, 취해야 하는 것, 행하여야 하는 것들에 대한 결단과 행동이 결과로 나타납니다. 이 때 성경이 종교의 역할을 올바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현대는 초스피드 인터넷 세계가 되었습니다. 과학이 주는 편리함입니다. 그러나 이 편리함이 수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폭탄 제조방법, 마약 제조방법, 총을 3D 프린터에서 만들어 내고, 음란, 도박, 자살사이트 등이 무분별하게 열려져 있습니다. 폭력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모방 심리를 일으키고, IS대원 모집을 인터넷을 통해 소개받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항해서 예술을 통하여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마음에 심어 주어 사람을 순하게 하려는 노력들입니다. 그러나 예술이 줄 수 있는 영향은 감정의 변화일 뿐 의식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의식의 변화만이 요즈음의 사회 병리현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의식이 변해 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규제나 처벌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종교에게만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절실히 느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주장 때문에 종교로써의 책임마저도 잊고 있는 때가 많습니다. 마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라는 광고 문안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가구 아닌 것에 침대를 꼽았다고 하는 우스갯소리와 같이 교회는 종교 이상의 생명이라는 뜻이지 종교와 다른 어떤 무엇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요즘의 뉴스는 교회가 종교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하는 때임을 말해주는 하나님의 음성과 같습니다. 대책 없이 문제만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소리 속에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을 품은 종교가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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