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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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80회 작성일Date 15-01-27 14:49본문
한편 되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서 누구나 서운하고 억울한 일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가족이나 친구, 또는 이웃집 사람에게 호소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사람은 나하고 한 편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내가 화가 나서 흥분하면 저하고 같이 흥분하면서 나의 말에 동조해 주는 사람이 가장 고맙고 위로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남의 호소를 들어줄 때에도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 하여야합니다. 이웃집 사람이 우리를 찾아와서 억울한 일 당한 것을 호소하는데, 그 사람을 고쳐주려는 듯, 잘못을 지적하거나 그것은 당신이 속이 좁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면 그런 대화는 상대방을 고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죄하게 됩니다. 따라서 남의 말을 들어 줄 때에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입니다.(롬 12:15) 한 편이 되어 준다는 것, 이것만큼 큰 위로도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비록 잘못 했더라도 그 잘못까지도 함께해 주는 것 이 진정한 위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기 입장에서 서운해 하고 자기 혼자 마음에 섭섭해 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외롭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움은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겪는 억울함은 ‘나 만 혼자’ 또는 ‘왜 나만 이렇게 대우 받는가?’ 라는 생각입니다. 이 외로움에서 위로 받는 길은 누군가 나와 함께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또는 같은 교회 성도나 한 동네의 이웃이 그런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당한 억울한 일을 호소 할 때에는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런 간청을 지적하여 고치려는 듯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맞고 틀린 것을 논한다면, 그것은 이미 대화가 아니라 정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서 우리를 지적하시지 않습니다. 기도 중에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어떤 하소연도 다 들어 주시며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수많은 시편의 기록들이 모두 주님께 대한 호소로 시작 하였다가 감사와 찬양으로 마쳐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남의 호소를 들어주면서 같이 동조해 주고 같이 가슴 아파해 주는 것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호소를 다 들어 주고 나면 상대방은 위로를 받고 돌아가지만 그 호소의 찌꺼기들은 우리의 마음에 앙금과 같이 남아서 이번에는 들어준 우리의 마음이 아픕니다. 그 만큼 다른 사람과 함께하므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을 묵묵히 이행하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억울함과 섭섭함, 서운함과 모욕감의 호소를 기도로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묵묵히 십자가로 가십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죄인인 우리와 함께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호소를 듣고 우리도 묵묵히 십자가로 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만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서 누구나 서운하고 억울한 일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가족이나 친구, 또는 이웃집 사람에게 호소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사람은 나하고 한 편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내가 화가 나서 흥분하면 저하고 같이 흥분하면서 나의 말에 동조해 주는 사람이 가장 고맙고 위로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남의 호소를 들어줄 때에도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 하여야합니다. 이웃집 사람이 우리를 찾아와서 억울한 일 당한 것을 호소하는데, 그 사람을 고쳐주려는 듯, 잘못을 지적하거나 그것은 당신이 속이 좁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면 그런 대화는 상대방을 고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죄하게 됩니다. 따라서 남의 말을 들어 줄 때에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입니다.(롬 12:15) 한 편이 되어 준다는 것, 이것만큼 큰 위로도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비록 잘못 했더라도 그 잘못까지도 함께해 주는 것 이 진정한 위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기 입장에서 서운해 하고 자기 혼자 마음에 섭섭해 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외롭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움은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겪는 억울함은 ‘나 만 혼자’ 또는 ‘왜 나만 이렇게 대우 받는가?’ 라는 생각입니다. 이 외로움에서 위로 받는 길은 누군가 나와 함께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또는 같은 교회 성도나 한 동네의 이웃이 그런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당한 억울한 일을 호소 할 때에는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런 간청을 지적하여 고치려는 듯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맞고 틀린 것을 논한다면, 그것은 이미 대화가 아니라 정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서 우리를 지적하시지 않습니다. 기도 중에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어떤 하소연도 다 들어 주시며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수많은 시편의 기록들이 모두 주님께 대한 호소로 시작 하였다가 감사와 찬양으로 마쳐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남의 호소를 들어주면서 같이 동조해 주고 같이 가슴 아파해 주는 것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호소를 다 들어 주고 나면 상대방은 위로를 받고 돌아가지만 그 호소의 찌꺼기들은 우리의 마음에 앙금과 같이 남아서 이번에는 들어준 우리의 마음이 아픕니다. 그 만큼 다른 사람과 함께하므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을 묵묵히 이행하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억울함과 섭섭함, 서운함과 모욕감의 호소를 기도로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묵묵히 십자가로 가십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죄인인 우리와 함께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호소를 듣고 우리도 묵묵히 십자가로 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만 우리는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팔수 강 승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