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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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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351회 작성일Date 14-11-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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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생
  1954년은 갑오(甲午)년 말의 해입니다. 6.25 전쟁이 휴전되던 그 다음 해입니다. 경제는 피폐하여 일인당 국민 소득이 62$ 이었습니다. 미국의 원조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경제를 원조경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의 교육열만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높아서 초등학교 의무 교육이 시행되었습니다. 54년생은 61년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교실은 부족하고 학생들은 많아서 오전, 오후반으로 2부제 수업을 했고 교실 마다 어린이 들이 많아서 콩나물 교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당시 놀이라고는 다방구, 기마전, 말 타기 등 주로 아이들끼리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놀이였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김일 선수의 레슬링은 최고의 인기 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흑백 TV가 있는 집에 모여서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터질 때면 목이 쉬도록 응원을 하고 경기가 끝나면 친구들끼리 즉석 레슬링 대회를 열었습니다. 목 조르기, 두발 장수, 허리 끼기, 그리고 박치기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54년생들은 60년대 중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1968년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서 쓰는 것이 도덕 시험이었습니다. 그리고 1972년, 대학 시험을 몇 달 앞 둔 10월에 유신 헌법이 제정 되었습니다. 일반 사회 과목의 정치 분야의 변경된 내용들을 모조리 새로 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암울했던 70년대를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장발족으로 지냈습니다. 대학 정문에는 항상 休校라고 붙어 있었고 강의는 주로 리포트로 대신 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졸업장은 주었습니다. 54년생들은 취직 문이 넓을 때 사회에 진출했습니다. 80년대의 경제발전, 수출 드라이브정책, 백 억 불 수출 달성의 열기를 몰아 온 나라가 수출에 혼신의 힘을 쏟을 때였습니다. 공장은 24시간 주, 야로 가동되고 근로자는 하루 평균 열 세 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 인상의 노사 분규를 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온 몸으로 느끼며 지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54년생들은 산업역군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산업화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도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름 때 묻은 작업복을 당당하게 입고 다녔고, 열 평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아도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가정 보다 직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반공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서 나라가 없으면 가정도 없다는 애국 국민으로 살아 왔습니다. 54년생들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2014년 갑오(甲午)년, 말의 해가 되었습니다. 54년생들이 환갑이 되는 해입니다. 어린 시절 환갑이라면 늙은 할아버지를 연상 했는데 이제 그들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2014년 11월의 늦가을, 거리의 낙엽을 밟으며 지난 60년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동 시대를 살아온 말 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벌써 환갑이구나. 살아온 날 만큼 하나님께 많이 감사하는 노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54년생이니까요.
                                        나팔수 강 승 구